여민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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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 때 창제된 <봉래의 鳳來儀>에 포함되었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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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세종 때 창제된 <봉래의 鳳來儀>에 포함되었던 음악.
내용

조선시대 세종 때 창제된 <봉래의 鳳來儀>에 포함되었던 음악.

<봉래의>라는 악무는 전인자(前引子)·여민락·치화평(致和平)·취풍형(醉豊亨)·후인자(後引子)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민락>은 그 두번째의 음악이었으며 한문으로 된 <용비어천가>의 일부를 노래로 부르기도 하던 곡이다.

<치화평>이나 <취풍형>은 국문·한문으로 된 <용비어천가>를 노래한 데 비하여 <여민락>은 한문가사의 <용비어천가>를 노래하였으며, 특히 <용비어천가> 중에서도 수장(首章)과 2·3·4장, 그리고 마지막 125장인 졸장(卒章)만을 가사로 삼아서 노래하였다.

<용비어천가>의 수장은 <여민락>의 초장이 되고 <용비어천가>의 2장은 전반과 후반이 분리되어 각각 <여민락>의 2장과 3장을 이루었고, 역시 전자의 3장은 후자의 4장과 5장, 4장은 각각 6장과 7장으로, 그리고 전자인 <용비어천가>의 졸장은 후자인 <여민락>의 8장과 9장, 10장으로 배정되어 있다.

<여민락>의 7장까지를 상칠장(上七章), 그리고 나머지 3장을 하삼장(下三章)으로 구분하여 상칠하삼장(上七下三章)이라고도 하였다.

중국계의 고취악(鼓吹樂)을 모체로 한 <여민락>은 음계도 5음음계의 향악과는 달리 황·태·중·임·남·무의 6음이 사용되었다.

사신의 연향이나 임금의 거둥 때 행악(行樂)으로 사용되던 음악인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여러 가지 변형이 생기게 되어 이미 조선 초기에 편찬된 ≪경국대전≫에는 <당악여민락만 唐樂與民樂慢>과 <당악여민락령 唐樂與民樂令>·<향악여민락만 鄕樂與民樂慢>·<향악여민락령 鄕樂與民樂令>의 곡명들이 보인다.

이와 같은 변천을 거쳐온 <여민락>은 현재에도 네 가지 갈래의 악곡으로 정착되어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고 연주되는데, <여민락>·<여민락만>·<본령 本令>·<해령 解令>이 곧 그것이다.

오늘날 연주되는 <여민락>이라는 이름의 음악은 관현합주로 연주되는 장중한 음악으로서 세종 당시의 <여민락>이었던 당악계, 즉 오늘날의 <여민락만>, 일명 <경록무강지곡 景籙無彊之曲>이라고 하는 중국계의 음악이 아니고, 황종의 음고가 C에서 Eb으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당피리 대신 향피리가 편성되는 등 두루 향악화된 악곡이다.

따라서, <여민락>이라 하면 향악화된 현재의 합주음악과 세종 당시의 <여민락>을 구분해 생각하여야 하며, 또한 이들은 서로 뿌리는 같지만 상호 이질적이니만큼 많은 변모를 드러내고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관현합주로 연주되는 현행 <여민락>은 한때 현악기 위주의 편성과 관악기 주축의 편성으로 구분하여 연주되기도 하였다. 전자를 <오운개서조 五雲開瑞朝>, 후자를 <승평만세지곡 昇平萬歲之曲>이라고도 하였는데, 현재는 주로 관현합주로만 연주하며 아명(雅名)도 <승평만세지곡>으로 통일하여 쓰고 있다.

많은 변주를 거쳐온 현행 <여민락>은 본래의 모습과는 달리 <용비어천가>를 노래하던 가사도 탈락되었을 뿐 아니라 악장의 수효도 본래의 10장에서 3장이 줄어들어 1장부터 7장까지만 연주되는 순수 기악곡으로 정착되었다.

이 곡은 각 장마다 원가락 12장단에 여음(餘音) 20장단, 도합 32장단으로 이루어졌으며 1·3·5·7장과 2·4·6장, 즉 홀수 장과 짝수 장끼리는 서로 동일한 가락이 많이 되풀이된다.

또한, 1장부터 3장까지는 한배가 느리고 잔가락이 많이 편입되어 원래의 선율과 많은 차이를 보이며, 4장부터 7장까지는 급박(急拍)이라고 하여 속도가 빨라지면서 본래의 선율도 비교적 많이 지니고 있다.

음계는 황종(Eb)·태주(F)·중려(Ab)·임종(Bb)·남려(C)·무역(Db)으로 되어 있는데, 무역음은 제6장의 여음 한 장단에서만 보일 뿐 여타의 가락들은 모두 무역을 제외한 나머지 5음들로 구성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세종이 중국계의 고취악을 참작하여 만들었다고 하는 본래의 <여민락>은 한문으로 된 <용비어천가>를 노래하기도 하였던, 도합 10장으로 이루어진 음악이었는데, 훗날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이 음악도 역시 가사가 탈락되고 장단이나 잔가락 음역, 편성악기 등이 바뀌는 등 많은 변모를 거듭해왔다.

오늘에 이르러서 <여민락>은 본래의 원형을 비교적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당악계(唐樂系), 중국계의 관악합주인 <여민락만>, 즉 <경록무강지곡>과, 역시 음계와 편성악기 등으로 보아 당악계 <여민락>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관악합주곡인 <여민락령>, 즉 <태평춘지곡 太平春之曲>이라고도 하는 <본령>과 이를 다시 변주시킨 관악합주인 <서일화지곡 瑞日和之曲>이라는 아명의 <해령 解令>, 그리고 음역이며 악기편성까지 향악화된 관현합주곡인 <승평만세지곡>이라는 아명의 현행 <여민락> 등 네 가지 합주음악으로 정착된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음악논총』(이혜구, 수문당, 1976)
『국악총론』(장사훈, 정음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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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한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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