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섬돌 위와 같이 높은 곳에서 연주하는 것을 지칭한다. 중국의 상고시대부터 특히 의식음악을 연주할 때는 으레 연주악대를 두 곳으로 벌여 놓았는데, 비교적 높은 곳인 당상(堂上)과 낮은 곳인 당하(堂下)가 그것이다.
따라서 궁궐 안의 구조로 볼 때 당상은 섬돌 위의 추녀 밑이 되며, 당하는 섬돌 아래의 넓은 전정(殿庭:궁전의 뜰)이 된다. 이처럼 연주악대를 둘로 갈라 놓은 것은 음양사상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즉, 등가(登歌)의 위치인 당상은 양(陽)의 위치이고 헌가(軒架:악기의 鍾이나 磬을 틀에 걺)의 위치인 당하는 음(陰)의 위치로서 이들 두 위치의 악대가 함께 연주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이다.
세종 때 박연(朴堧)은 종묘제향이나 사직제(社稷祭)에 당상이나 당하에서 모두 양률(陽律)의 궁(宮 : 주음)을 쓰고 있는 것은 음양조화에 어긋나는 것이니 옛날의 법식대로 당상에서는 음려(陰呂)의 궁을 쓰고 당하에서는 양률의 궁을 쓰자고 임금에게 상세히 소를 올린 적이 있다.
등가라는 말에서 오를 등(登)자는 높은 당상으로 올라간다는 뜻이며 노래 가(歌) 자는 노래를 주축으로 한다는 뜻으로서, 금(琴)이나 슬(瑟)과 같은 현악기의 반주로 송시(頌詩) 같은 가사를 노래해가는 것이 등가의 주된 기능이다. 이처럼 등가에서는 노래를 위주로 하고, 당하악대의 일종인 헌가(軒架)에서는 죽관악기(竹管樂器)의 연주를 주축으로 하는 것이 본래의 고법(古法)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법제는 시대에 따라서 많이 변질되어 중국에서는 당상에서도 팔음악기(八音樂器:악기를 만든 재료에 따라 여덟 가지로 나눈 우리 나라와 중국의 악기)를 비치해서 쓰고 당하에서도 가공(歌工:악사)을 배치하여 쓰던 시절이 있었다.
이같은 사례에 따라서 우리 나라에서도 당하악에 가공을 쓰던 적이 있는데, 고려시대의 헌가와 세종조의 회례연헌가나 성종조의 종묘헌가 등이 그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