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군평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전기 군관으로 도술에 능했던 도교인.
인물/전통 인물
  • 본관미상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서울특별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양은용 (원광대학교, 인도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전기 군관으로 도술에 능했던 도교인.

내용

한양(漢陽) 출신. 『지봉유설(芝峯類說)』과 『청강쇄어(淸江瑣語)』에 따르면, 어려서 무예를 익혀 군관이 된 뒤 서울로 가는 도중에 이인(異人)을 만나 『황정경(黃庭經)』과 수련법을 전수받았으며, 당시 전우치(田愚治)와 함께 도술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였다.

다시 김시습(金時習)으로부터 연단도법(練丹道法)을 전하여 받았고, 『참동계(參同契)』와 『용호비지(龍虎秘旨)』도 전수받았다. 그는 이 비법을 곽치허(郭致虛)에게 전하였고, 곽치허는 『해동전도록(海東傳道錄)』의 저자인 한무외(韓無畏)에게 전하여 주었다.

이인으로 불린 그는 몸이 항상 뜨거워 늘 차가운 철편(鐵片) 4개를 가지고 번갈아가며 양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는데, 잠깐 사이에 화로쇠같이 뜨겁게 달아올라 자주 찬 철편으로 갈아 끼웠다고 한다.

또,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않고 늘 목욕을 해서 어깨와 등을 식혔고, 동짓날에도 우물물 한 동이를 등에 부어야 하였다 한다. 그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하여 과식을 경계할 것을 주장하였다.

일생을 병 없이 지내다가 80여 세에 죽었는데, 시체가 옷같이 가벼웠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시해법(尸解法)을 부려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아들 임(霖)도 도술을 배워 나이 90세에 죽었다.

참고문헌

  • - 『청학집(靑鶴集)』

  • - 『한국(韓國)의 도교사상(道敎思想)』(차주환, 동화출판공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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