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청주 출신. 청주상업학교·연희전문학교·서울대학교 사학과를 거쳐서 1958∼1979년까지 중앙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하면서 같은 학교의 문학부장·인문학연구소장을 맡았으며, 동양사학회 회장, 한국문헌연구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일찍이 중국사를 연구하였으며 특히 양명학을 깊이 연구하였는데, 윤남한의 『조선시대의 양명학 연구』는 정인보(鄭寅普) 이후의 최대의 업적이었다.
또한, 역사연구의 수준을 제고하기 위하여서는 기초조사 및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각 도서관에 소장된 문집을 조사하였는데 1962∼1979년까지 근 20년간 그 문집 조사카드가 10만매 100만항목에 달하였다.
이를 토대로 문집에 수록된 내용을 색인화하여 A4판 전10책 2만면을 편찬할 계획을 수립하여 작업을 진행하다가 죽었다. 윤남한이 죽은 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후원을 받아 후학들이 『잡저기설류기사색인』 1책을 발행하였다.
이 색인은 한국역대 문집의 잡저·기·설류에 나오는 인명·지명 사항을 간단히 검색하고, 그 문집의 소장처까지 확인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아직 자료로 보관되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이조 양명학의 전래와 수용문제」·「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의 유학사상」·「남언경(南彦經)의 생애와 사상 및 양명학문제」·「하곡학(霞谷學)의 기본방향과 단계성」·「한국유학사」·「고려 유학의 성격」 등이 있고, 『남계집(南溪集)』 해제 등 많은 해제와 학계동향, 『국역하곡집』 등의 번역서, 『대세계 문화사』 등 저서와 다수의 논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