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주(坡州). 1591년(선조 24) 병오식년(丙午式年)에 의과등제하고, 1612년(광해군 4)에 통훈대부(通訓大夫)·내의원직장(內醫院直長)·부참군(副參軍)·의서인출감교관(醫書印出監校官)을 역임하였고, 뒤에 내의정(內醫正)을 지냈다.
부경사(赴京使)에 수행하여 명나라의 왕응린(王應遴)과 의사문답(醫事問答)을 하였는데, 왕응린은 그 내용을 그의 저서 『왕응린잡집(王應遴雜集)』에 수록하였다. 그 뒤 이것을 초출(抄出)하여 일본에서 1716년에 『답조선의문(答朝鮮醫門)』(1책)을 간행하였다.
그는 이희헌(李希憲)과 같이 『동의보감』·『찬도맥(纂圖脈)』·『신찬벽온방(新撰辟瘟方)』·『벽역신방(辟疫神方)』의 감교관(監校官)이 되어 편찬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