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순창군수, 예조참의,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덕포(德浦)
  • 자경(子敬)
인물/전통 인물
  • 본관파평(坡平)
  • 사망 연도1698년(숙종 2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순창군수|예조참의|대사헌
  • 출생 연도1631년(인조 9)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동길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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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순창군수, 예조참의,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경(子敬), 호는 덕포(德浦). 아버지는 장령 윤순거(尹舜擧)이며,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로 관찰사 이춘원(李春元)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52년(효종 3)에 생원시에 합격, 그 뒤 10년이 지나 빙고별제(氷庫別提)와 종부직장(宗簿直長)·인의(引儀)·상의주부(尙衣主簿) 등을 지냈다. 1666년(현종 7)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성균전적을 거쳐 병조좌랑·정언·지평·수찬·헌납 등을 지냈다.

1673년 부교리에 승진되었고, 다음 해 능주목사로 부임하였다. 1679년(숙종 5) 사간에 임명되고 다음 해 순창군수에 부임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렸다. 1681년 박태손(朴泰遜)과 김수항(金壽恒)의 천거로 예조참의에 발탁되었다.

1689년 대사헌에 임명되었는데 남구만(南九萬)이 어전에서 “윤진은 학문과 인격이 훌륭하니 특별히 정성과 예로써 대우하여야 됩니다.”라고 한 것을 보면, 당시에 윤진의 덕망을 짐작할 수 있다. 1696년 경기관찰사로 임명되었으나 대신들의 진정으로 체대를 허락하여 전직에 유임되었다.

윤진은 관직에 있을 때 붕당을 타파시킬 것, 언로를 열 것, 구황·휼민에 힘쓸 것 등 여러가지 시의적절한 정책건의를 많이 하였다. 용계서원(龍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덕포유고(德浦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 - 『간재집(艮齋集)』

  • - 『덕포유고(德浦遺稿)』

  • - 『명곡집(明谷集)』

  • - 『명재유고(明齋遺稿)』

  • - 『서계집(西溪集)』

  • - 『약천집(藥泉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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