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사기(沙器) 상인 임신(林信)의 딸로 사기옹주(沙器翁主)로도 불렸다.
단양대군(丹陽大君)의 종이었던 것을 1342년(충혜왕 3)에 은천옹주(銀川翁主)로 봉하였다. 충혜왕이 여러 비(妃) 중에서 특히 사랑하였다.
아들 석기(釋器)를 낳으니 시장사람들의 포백(布帛)을 빼앗아 폐백(幣帛)을 삼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1344년 충혜왕이 원나라에 잡혀간 뒤 쫓겨났다. 석기는 공민왕 때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옹주의 아버지 임신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