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판개성부사,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88년에 지문하(知門下)로 상만호가 되어 임견미사건(林堅味事件)을 맡았고, 1389년(공양왕 1) 문하평리(門下評理)로 재직시에는 김저(金佇)의 옥사에 연루, 유배되었다가 1391년 경상도관찰사로 다시 등용되었다.
이듬해 조선이 건국되자 삼사좌사(三司左使)로 진위사(陳慰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고, 뒤에 청천백(淸川伯: 淸城伯이라고도 함.)에 봉하여졌다. 1394년(태조 3) 판개성부사로 있을 때 전날 사신으로 밀무역을 한 사실과 타인의 가기(家基)를 탈취한 일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이듬해 파직되었다.
1399년(정종 1) 조박(趙璞) 살해 음모에 연루되어 청주에 유배되고, 이듬해 판삼사사(判三司事)로 치사하였다. 시호는 공절(恭節)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태조실록(太祖實錄)』
- 『정종실록(定宗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삼봉집(三峰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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