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인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판개성부사,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공절(恭節)
  • 난파(蘭坡)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주(淸州)
  • 사망 연도1402년(태종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문하평리(門下評理)|경상도관찰사|판개성부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인혁 (제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판개성부사,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난파(蘭坡). 아버지는 문간공(文簡公) 이정(李挺)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우왕 초에 밀직부사를 지내고, 1382년(우왕 8) 경상도도순문사로 왜구를 소탕하였다.

1388년에 지문하(知門下)로 상만호가 되어 임견미사건(林堅味事件)을 맡았고, 1389년(공양왕 1) 문하평리(門下評理)로 재직시에는 김저(金佇)의 옥사에 연루, 유배되었다가 1391년 경상도관찰사로 다시 등용되었다.

이듬해 조선이 건국되자 삼사좌사(三司左使)로 진위사(陳慰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고, 뒤에 청천백(淸川伯: 淸城伯이라고도 함.)에 봉하여졌다. 1394년(태조 3) 판개성부사로 있을 때 전날 사신으로 밀무역을 한 사실과 타인의 가기(家基)를 탈취한 일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이듬해 파직되었다.

1399년(정종 1) 조박(趙璞) 살해 음모에 연루되어 청주에 유배되고, 이듬해 판삼사사(判三司事)로 치사하였다. 시호는 공절(恭節)이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태조실록(太祖實錄)』

  • - 『정종실록(定宗實錄)』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삼봉집(三峰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