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북청 출생. 어려서 한학을 배우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학원[明治學院]에서 수학하고 돌아왔다. 1925년 현 서울신학대학의 전신인 경성성서학원(京城聖書學院)을 졸업하고 평양에 파송되어 교회를 세웠다.
1928년 조선예수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지금의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목사로 안수 받고, 평안남도지방 감리목사 대리직을 맡아 선교 사업에 헌신하다가, 1931년 경성성서학원의 교수로 전임하여 일제 말에 폐교되기까지 인재양성에 주력하였다.
광복과 함께 다시 개교한 서울 신학교의 교장으로 교단산하 신학교육기관의 최고책임자로서 후학양성에 전력을 다하는 동시에, 교단 기관지인 『활천(活泉)』의 주필 직을 겸하여 성서연구에 전념, 『성서영해전집』·『성서인물강화』 등을 저술하였다.
그는 학자적이면서도 감화력 있는 유창한 설교가로서도 명성이 높아 설교집으로 『진리의 강단』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광복 직후 혼란 속에서도 학교를 재건하여 반석 위에 올려놓았으나, 6·25전쟁 때 서울에 남아 끝까지 학교를 지키다가 1950년 8월 23일 납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