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성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이조참의, 대사성,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삼취헌(三翠軒)
  • 시숙(時叔)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718년(숙종 4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이조좌랑|이조참의|대사성|병조참판
  • 출생 연도1651년(효종 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동익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이대성 글씨 미디어 정보

이대성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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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이조참의, 대사성,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시숙(時叔), 호는 삼취헌(三翠軒). 이유간(李惟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경직(李景稷)이다. 아버지는 판중추부사 이정영(李正英)이며, 어머니는 유기선(柳基善)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82년(숙종 8)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문음(門蔭)으로 입사하여 호조좌랑에 이르렀다. 1699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곧 지평·사서를 거쳐 1702년 정언(正言)이 되었다. 이때 붕당의 폐해와 관련하여 시정(時政)의 득실을 논하는 장문의 상소를 올렸다.

이로 인하여 홍문관 관원들의 탄핵을 받았고, 재상들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었다. 3년 뒤 재기용되어 문학에 임명된 이래 지평을 거쳐 홍문록에 올랐고, 수찬·부교리·지평·부수찬 등의 언관을 역임하다가 1708년 이조좌랑에 임명되었다.

이어서 이조참의·대사성·이조참판·병조참판 등 청요직(淸要職)을 번갈아 역임하였다. 1717년 사은 겸 동지부사(謝恩兼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다음해 사직으로 있다가 죽었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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