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명은 이계윤(李桂允). 자는 우문(又文). 호는 몽학(夢鶴). 경기도 광주 출신. 유인석(柳麟錫)의 문인이다.
1891년 성균관진사, 1902년 제천군 주사가 되었다. 1896년 유인석을 도와 의병을 일으켜 소모장(召募將)으로 활약하였으며, 1905년 황학수(黃學秀)·구연학(具然學)·김진태(金鎭泰)와 힘을 합쳐 제천에 동명학교(東明學校)를 설립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안동현 삼도구(安東縣三道溝)의 대한독립군에 가담하였다. 1921년 삼도구의 한 중국인 집에서 유숙하다가 일본경찰의 습격을 받아 교전중 다수의 일본경찰을 살상하였다.
그러나, 안용봉(安龍鳳)·박완식(朴完植)·안중석(安重錫)·정인복(鄭仁福)·백학원(白學源)·김근배(金根培) 등 15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