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용인(龍仁). 아버지는 홍복도감 판관(弘福都監判官)을 지낸 이중인(李中仁)이다.
1360년(공민 9) 10월 과거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다. 1390년(공양 2) 정월 왕이 처음으로 경연(經筵)을 열었을 때 참찬관이 되었으며, 12월 밀직부사를 거쳐 이듬해 12월 서해도도관찰사(西海道都觀察使)를 지냈다.
1396년(태조 5) 8월 도성감역관(都城監役官) 박리(朴理)가 군인을 시켜 큰 돌을 운반하다가 길이 좁아 그의 집 울타리를 걷어치우게 되었을 때 그가 박리를 구타한 바 있었는데, 9월 형조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여 순군옥(巡軍獄)에 갇힌 일이 있었다. 이색(李穡)과 친교가 있어 『목은집(牧隱集)』에 이사위에 관한 시가 여러 편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