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수원부사, 전라좌도수군절도사, 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17년에는 수원부사로 있으면서 이행(李荇)을 변론한 상서가 광패(狂悖)한 표현이 많다고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519년 조광조(趙光祖) 등 신진사류에 의하여 이루어진 대규모의 정국공신 삭훈시에 이성언도 삭훈되었다가 기묘사화 후 복적되었다.
1522년에는 당시에 통훈대부 검상이었으나, 무재를 지닌 문신으로 여겨져 당상관으로 가자된 뒤 만포첨사에 임명되었다. 1525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를 거쳐 1528년에는 다시 무재가 있다는 이유로 가자되면서 함경도관찰사에 제수되었으나, 대간의 반대로 부임하지는 못하였다.
그 뒤 황주목사를 지내고 1531년 함경북도병마절도사, 1532년 함경도관찰사를 거쳐 1533년에는 한성부좌윤에 이르렀다. 1534년에 진위진향사(陳慰進香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용재집(容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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