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중(君重), 호는 월촌(月村). 태조의 7대손이며, 안남령 이무창(李茂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우년(李禹年)이다. 아버지는 이형(李浻)이며, 어머니는 박언(朴彦)의 딸이다.
1577년(선조 10) 유학으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83년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듬해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안산군수 홍가신(洪可臣)과 삭녕군수 조대건(曺大乾)이 선치가 있음을 아뢰어 승진하도록 하였다.
1590년 담양부사가 되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자청하여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몸소 군사를 모집하여 왜적을 토벌하려 하였으나 전선이 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다.
곧 순찰부사가 되어 민병 800여명을 거느리고 전선으로 나아가 참찬 한응인(韓應寅)의 군무를 도왔으나, 임진강의 방어선이 무너져 사태가 급박하여지자 패주하였다. 패주한 죄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한때 파직당하였으나, 1594년 강원감사·길주목사·황해도관찰사가 되었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고 목소리와 용모가 아름다워 필한(筆翰)·문사(文辭)·언어(言語)·가성(歌聲)·용모를 합하여 오옥(五玉)이라는 별명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