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산정(山庭). 경상북도 의성 출생. 이태필(李泰弼)의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京都] 제2중학교(5년제)를 거쳐 1940년 도쿄마포수의전문학교[東京麻布獸醫專門學校]를 졸업하였다. 수학중 만주국 고등문관고시에 합격한 인연으로 졸업 후 만주국에서 축산 분야 기좌(技佐)·종축장장으로 활동하였다.
광복과 더불어 귀국하여 대구농림학교 및 부산여자중학교(6년제) 교사, 농림부중앙가축위생연구소 기좌(5급 기술직 공무원 중의 하나)를 지냈다. 1951년 서울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1981년 정년 때까지 수의생리학 분야의 교육과 연구에 종사하였다.
「부자전즙분말이 실험동물의 혈액상 42K, 24Na 섭취 및 갑상선 기능에 미치는 영향」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수의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학위논문을 비롯한 여러 논문을 통해 방사성동위원소의 수의학적 응용 노력을 비롯하여 여러 연구업적을 남겼다.
한편, 행정력에도 탁월한 면을 보여, 당시 8개의 수의학과를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으로 통합하고, 수의과대학 수업연한을 6년으로 연장하도록 하는 획기적인 교육제도 개선에 힘을 기울였으나, 후속 조치의 미흡으로 수업연한 4년, 수의과대학의 부활 등 원래 상태로 환원되었다.
또한, 농과대학 시절에는 수의학과장 및 수의과대학장으로 재임하면서 여러 종류의 교육차관을 도입하여 학교발전은 물론 수의학교육의 기틀을 다지는 데 이바지하였다.
김용필(金容珌) 등과 함께 대한수의학회를 창립하여 부회장 및 회장을 역임하는 한편, 서울시 수의사 회장 및 대한 수의사회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학회발전과 수의사의 권익창달에 기여하였다.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으며 1981년 학술원 회원에 피선되었다. 저서로는 『최신수의 임상학 개요』(1969)·『가축생리위생』(1976)·『가축생리학』(197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