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여천(與天). 평양 출생. 1912년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마친 뒤 베이징 협화대학(協和大學) 부속병원에 근무하였다. 이때 안창호(安昌浩)를 만나 그의 사상에 감명을 받아 1924년 흥사단에 입단하였다.
1929년 이사회장을 역임하는 등 일생동안 흥사단운동에 헌신하였다. 1926년 미국 시카고 서북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세브란스의과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1936년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광복 후 과도정부 보건후생부장을 지냈고, 그 뒤 세브란스병원장을 위시하여 연대동문회장·동명학원 이사장·국제외과학회 한국지회장·대한나협회장·서울국제로터리회장·대한적십자 중앙위원·대한병원협회장·기독교장로회장 등 다방면에 걸쳐 사회봉사의 훌륭한 업적을 쌓았다.
질소검박(質素儉朴)·근면절약·애국애족의 생활철학을 몸소 실천하여 나라의 원로로서 국민의 많은 존경을 받았다. 또한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진실과 봉사정신의 모범을 보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