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성균관전적, 예빈시정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풍기군수로 나가서는 어떤 호족의 모함으로 파면되었다가, 1652년(효종 3)에 다시 예조정랑으로 서용되었으나 이듬 해에 아버지의 상을 당하였다. 상기(喪期)를 마치고 나서는 벼슬길을 단념하고 청성산(靑城山)에 들어가 낙고초당(洛皐草堂)을 짓고 학문을 닦았다.
1656년에 부름을 받고 나가 성균관전적을 거쳐, 통례원상례(通禮院相禮)에 올랐으나 사양하였다. 1665년 예빈시정(禮賓寺正)에 제수되어 숙배(肅拜)를 나갔다가 서울 객관에서 죽었다.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하여 예조정랑으로 있을 때에는 정랑의 신분으로서 인조가 내원(內苑)에 별전(別殿)을 지으려는 것을 끝까지 만류하였고, 함평·풍기의 외직에 있을 때에는 고을 백성들에게 칭송을 들었다. 저서로는 『개곡문집(開谷文集)』 4권이 있다.
참고문헌
- 『개곡문집(開谷文集)』
- 『국조방목(國朝榜目)』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 『인조실록(仁祖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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