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정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지돈령부사, 판돈령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명숙(明叔)
  • 시호정간(靖簡)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
  • 사망 연도1782년(정조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공조판서|지돈녕부사|판돈녕부사
  • 출생 연도1699년(숙종 2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정기 (창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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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지돈령부사, 판돈령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명숙(明叔).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의 현손이며, 해양군(海陽君) 이희(李僖)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가덕대부 화산군(化山君) 이곤(李滾)이고, 아버지는 밀창군(密昌君) 이직(李樴)이며, 어머니는 오시적(吳始績)의 딸이다. 영조 때 공조판서를 지낸 이성규(李聖圭)의 아버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23년(경종 3) 생원이 되고, 호조정랑을 지낸 뒤 1736년(영조 1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이 되었다. 집의(執義)·승지·예조참판 등을 거쳐 1740년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듬해 병조참판에 이어 1743년 한해에 한성우윤·강화유수·대사헌·대사간을 역임하고, 1744년 이조참판으로 재직 중 동지사 겸 사은사(冬至使兼謝恩使)의 부사가 되어 청나라에 가게 되었다.

사행 중 국위를 손상시켰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으나 곧 복관되어 1746년 다시 병조참판으로 기용되었으며, 이후 대사간·대사헌·우참찬을 거쳐 1754년 예조판서에 올랐다. 그 뒤 우빈객·판의금부사·공조판서·지돈녕부사·판돈녕부사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시호는 정간(靖簡)이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사마방목(司馬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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