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판윤,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휘(仲輝), 호는 파서(琶西) 또는 구학(臞鶴).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의 5대손이며, 이항곤(李恒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석노(李錫老)이고, 아버지는 감역 이진원(李進源)이며, 어머니는 조철명(趙哲命)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74년(영조 50)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한림에 들어갔다. 그 뒤 이조좌랑·장령·이조참의·대사성·승지를 거쳐, 강릉현감이 되었을 때는 상소하여 해폐(海弊)·군폐(軍弊)·세폐(稅弊)·삼폐(蔘弊) 등 네가지 읍폐(邑弊)를 들고 그 시정을 건의하였다.
이어 대사간·대사헌과 외직으로 안동부사, 1798년(정조 22) 함경도관찰사가 되어 변방의 야인을 잘 다스렸고, 1800년 주청부사(奏請副使)로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순조가 즉위하자 한성판윤, 공조·예조판서가 되고, 1810년 동지사(冬至使)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판돈녕부사로 치사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었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금석록(金石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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