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구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대사헌,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국간(菊幹)
  • 시호충간(忠簡)
  • 치서(稚瑞)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
  • 사망 연도1858년(철종 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한성부판윤|공조판서|대사헌|우의정
  • 출생 연도1784년(정조 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원유한 (동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대사헌,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치서(稚瑞), 호는 국간(菊幹). 좌의정 이건명(李健命)의 현손이며, 이면지(李勉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철상(李徹祥)이고, 아버지는 이장현(李章顯)이며, 어머니는 김치온(金致溫)의 딸이다. 청검(淸儉)하며 근면하기로 이름났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14년(순조 14)에 진사가 되고, 1816년(순조 1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29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으며 그 뒤 성균관대사성·이조참의를 역임하고, 1836년(헌종 2)에 이조참판에 올랐다.

이듬해 전라도관찰사에 임명되고, 1841년 한성부판윤·공조판서·대사헌을, 이듬해 형조판서·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 한편 그 해 평안도관찰사로 파견되어 의주를 비롯한 여러 산성에 군량을 비축하도록 하였고, 별무시(別武試)를 실시하였다.

1844년 사헌부대사헌으로 김유근(金逌根)·김홍근(金弘根)의 추죄를 주장하다가 덕원부에 유배, 이듬해 석방되어 사은 겸 동지정사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47년 형조판서·대사헌·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1849년(철종 즉위년) 이조판서, 이듬해 예조판서·판의금부사를 역임하였으며, 1852년 우의정에 올랐다. 그 때 나이 69세로 치사(致仕)하기를 연이어 간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으며 바로 좌의정이 되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판중추부사·광주유수(廣州留守)를 역임하는 등 치정(治政)에 힘썼다. 70세가 되어 국가로부터 궤장(几杖)을 수여받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참고문헌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헌종실록(憲宗實錄)』

  • - 『철종실록(哲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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