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안산자(安山子).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 출신이다.
1951년 전주공립중학교를 거쳐 1955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1959년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8년 동국대학교에서 『한국개항장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대학 졸업 다음 해인 1956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촉탁으로 근무를 시작해 5년 만인 1961년에 사임, 홍익대학 전임강사로 전임했다가 1년 만에 사임하였다. 1962년 3월 국사편찬위원회에 복직해 편수관보 · 부편수관 · 조사실장 · 편사실장을 역임하고, 1982년 7월 국사편찬위원장에 취임하였다.
30년 가까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재직하면서 수많은 귀중한 사료들을 발굴, 정리, 편찬해 학계에 공헌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광복 이후 국사학계의 연구 업적을 총정리, 집성해 통사(通史)로 간행하는 사업을 추진했는데, 이 사업을 주관해 1973년부터 1979년 사이에 『한국사』 25권을 완간하였다.
이는 북한학계에 자극을 주어 1980년대에 『조선전사』가 간행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 획기적인 사업이었다. 이렇게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 업무에 종사하는 한편, 국사학계의 중요 사업에도 거의 모두 참여해 중추적 구실을 하였다.
탁월한 학회활동을 통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우리 학계의 연구 성과를 알리는 데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국제역사학회의 한국위원회 위원으로 1975년 『Historical Studies in Korea』를 간행해 국제역사학회의에 배포한 것이 한 예이다.
한편, 홍익대학교 · 성균관대학교 · 동국대학교 등에 출강해 후진 양성과 국사 보급에 힘썼다. 1970년 국제역사학회의 한국위원회 위원, 1981년 서울특별시지방문화재위원 · 체신부정책자문위원, 1983년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위원 · 독립유공자공적심사위원 · 청백리상심사위원 · 문화재위원회(현,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을 지내는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폭넓게 활동하였다.
국사편찬위원장 재직 중 국사편찬위원회의 성장 · 발전을 위한 기능 강화와 국사관 신축 등 당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던 중 과로로 쓰러져 1984년 1월 10일 순직하였다.
개인적인 연구에도 정진해 「조선 초기 왜인접대고(朝鮮初期倭人接待考)」 · 「구한말 외국인거류지의 종별과 성격」 · 「17, 18세기 한일무역의 전개」 · 「개항장내 외국인영업」 · 「해외소재한국문헌」 등 30여 편의 논문, 『근대민족의식의 맥락』 · 『한국의 역사』 등 10여 권의 저서와 역서를 남겼다.
한일관계사 연구에 독보적인 업적을 남겨 1964년 『조선전기대일교섭사연구』를 출간하여 이 방면 연구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학술 · 문화 방면의 여러 공로를 인정받아 1979년 12월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1984년 1월 13일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