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아찬으로 시중을 역임한 관리. 대신.
내용
이 공으로 837년 정월 상대등이 된 김명의 뒤를 이어 시중이 되었다. 그러나 838년 정월에는 상대등 김명을 도와 난을 일으켜 왕의 근신을 살해하니, 희강왕은 온전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자결하였다. 이에 김명(閔哀王)이 즉위하였다.
그 해(민애왕 1) 12월에 균정의 즉위를 지지하였던 김양(金陽)과 균정의 아들 우징(祐徵)이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 장보고(張保皐)의 군사를 빌려 공격하여왔다.
이에 민애왕은 김민주(金敏周)로 하여금 막게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839년 정월에는 달벌(達伐 : 지금의 대구)에 도착한 적을 이찬(伊飡) 대흔(大昕), 대아찬 윤린(允璘)·의훈(疑勛) 등으로 하여금 막게 하였으나 또한 실패하여 김양의 군대에게 시해되었다.
그리하여 김우징(神武王)이 즉위하자, 이홍은 화를 두려워하여 처자를 버리고 산림으로 도망하였으나,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신라하대(新羅下代)의 집사성(執事省)」(이기백, 『신라정치사회사연구(新羅政治社會史硏究)』, 일조각, 1974)
- 「신라하대(新羅下代)의 왕위계승(王位繼承)과 정치과정(政治過程)」(이기동, 『역사학보(歷史學報)』85,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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