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장령, 강릉부사, 광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때 심양에서 채유후(蔡裕後)와 더불어 술을 마시며 유신(庾信: 중국 남북조시대 북주(北周)의 문장가)의 「애강남부(哀江南賦)」를 읊어 서로 통곡한 일이 있었는데, 이로 인하여 돌아온 뒤에 벌을 받아 일시 파직되었다.
청군에 의하여 강화도가 함락되었을 때, 대신 윤방(尹昉)이 묘사제조(廟社提調)로서 신주를 분실하고 자기 몸만 피해 갔다 하여 이를 탄핵, 유배당하게 하였다.
그 뒤 지제교·정언·지평·장령 등을 지낸 다음, 각 지방의 수령을 역임하고, 1648년 강릉부사로 있을 때 치적이 뛰어나 모범관리로 표창받았다. 그 뒤 1664년(현종 5) 광주부윤(廣州府尹)을 끝으로 관직을 떠났다. 제주 귤림서원(橘林書院) 별사(別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심양상계(瀋陽狀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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