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합천(陜川). 자는 효옹(孝翁). 호는 추계(秋溪). 이지로(李智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병조참판 이순생(李順生)이고, 아버지는 공조판서 이윤검(李允儉)이며, 어머니는 훈련원참군 최계한(崔季漢)의 딸이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이다.
1510년(중종 5) 진사가 되고, 1516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듬해 정자를 거쳐 지평·이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지평으로 있을 때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외람되게 기록된 사람을 공신에서 삭제할 것을 논핵하였다.
기묘사화가 일어나던 날 밤, 이연경(李延慶)·권장(權檣)과 함께 궐문으로 들어가려 하였으나 관직이 이미 삭탈되었다 하여 제지를 당하였다.
그는 경연청(經筵廳)에 들어가 영상에게 고하기를, “사건이 갑자기 생기고 관직은 이미 삭탈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시종반열(侍從班列)에 있는 몸으로 이런 큰 변을 보고 모르는 체하고 물러설 수 없습니다. 또, 좌우에 사필(史筆)을 잡은 자가 없으면 국가 대사가 없어져 전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민망스럽습니다.”라고 하였다.
영상이 봉교 조구령(趙九齡)·채세영(蔡世英)·권예(權輗)를 시켜 전과 같이 사건을 기록하도록 하였다. 그 해 12월 관직을 삭탈당하고 고향인 선산에 돌아가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