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반야경소』는 『인왕경소』라고도 하는데, 저자는 통일 신라의 승려 원측(圓測)이다. 원측의 휘(諱)는 문아(文雅)이며, 원측은 자(字)이다. 신라 왕족 출신으로서 15세인 627년(진평왕 49) 당(唐)에 건너가 법상(法常) · 승변(僧辨)에게 배웠다. 주1이 귀국한 이후에는 새롭게 한역된 유식학 경론을 공부하였고 여러 경전 한역에 참여하였다. 또한 다양한 경전에 대한 논소를 찬술했으나 『인왕경소』와 『반야바라밀다심경찬(般若波羅蜜多心經贊)』,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 만이 전한다. 696년 7월 22일에 낙양(洛陽)의 불수기사(佛授記寺)에서 입적하였다.
이 책은 6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속장경(續藏經)』 권40,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 권33,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 제1책 등에 실려 있다.
이 책의 편찬 및 간행 경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이 책에서 695년~699년에 새로 한역된 『화엄경』 80권본이 인용된 점으로 미루어 695년 이후부터 원측이 입적한 696년 사이에 불수기사(佛授記寺)에서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왕경소』는 주2이 번역한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經)』[이하 『인왕경』이라 약칭함]에 대해 원측(圓測)이 찬술한 주석서이다. 『인왕경』의 주요 내용은 내적으로 주3와 십지행(十地行)을 수호하고 외적으로 국토를 각종 재난으로부터 수호하는 것을 다루고 있다. 『법화경(法華經)』, 『금광명경(金光明經)』과 함께 호국(護國) 3부경 중 하나로 꼽힌다. 원측은 진제(眞諦, 주4의 『인왕반야경소』를 참고하여 직접 비교하고 대조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방법을 통해 『인왕경소』를 찬술하였다. 또한 유식학자로서의 입장만이 아니라 여러 대 · 소승 경론들을 참고하였다.
원측은 『인왕경』의 서품(序品), 관공품(觀空品), 보살교화품(菩薩敎化品), 이제품(二諦品), 호국품(護國品), 산화품(散華品), 수지품(受持品), 촉루품(囑累品) 등 총 8품을 삼분과경(三分科經)의 학설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파악하고, 각각 교기인연분(敎起因緣分), 성교소설분(聖敎所說分), 의교봉행분(依敎奉行分)이라고 명칭하였다.
첫째 교기인연분은 『인왕경』의 가르침을 설하게 된 동기를 밝힌 부분으로 서품이 해당된다. 서품은 증신서(證信序)와 발기서(發起序)로 구분했는데, 증신서에서는 『인왕경』의 신빙성에 대한 문제를 밝혔고, 발기서에서는 여래의 상서로움에 대해 설명하였다.
둘째 성교소설분은 『인왕경』의 내용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부분으로 서품 이하 다섯 품이 해당된다. 이 중 관공품 · 보살교화품 · 이제품은 내적으로 불과와 십지행을 수호하는 법에 대한 내용을 설하였는데 원측에 따르면 관공품 불과의 수호라는 측면에서 자리행(自利行)을, 보살교화품은 십지의 교화라는 측면에서 이타행을 주로 설하고 있다. 이제품은 내적인 수호의 이론적 근거로 이제(二諦)의 이치를 설하여 모든 대립을 넘어선 불이(不二)를 설하였다. 원측은 이에 대해 불이를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여 보살이라면 불과와 교화와 십지행을 수호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호국품은 이 경을 강설함으로써 외적으로부터 국토를 지키는 법에 대한 것이고, 산화품은 대중들이 부처님에게 은혜를 입었음을 감사하며 공양하는 내용이다. 원측은 호국품을 국토를 재난에서 지키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부분과 이를 구체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다양한 고사를 인용한 부분으로 구분해서 해석하였다.
셋째 의교봉행분은 부처님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함을 설하는 부분이다. 원측은 의교봉행분에 촉루품 만이 아니라 수지품을 포함시켰는데, 길장(吉藏)이나 지의(智顗)가 수지품의 일부 또는 전체를 유통분(流通分)에 해당하는 의교봉행분이 아닌, 정설분(正說分)에 포함시켜 해석한 것과 차이가 있다. 원측에 따르면 수지품은 수지(受持)와 권학(勸學)에 대한 내용이므로 유통분에 해당하는 의교봉행분이며, 촉루품은 부촉(付屬)을 밝혔으므로 마찬가지로 의교봉행분으로 분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