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지역의 문화유산을 수집 · 보전 · 전시하고 시민들이 함께 배우고 즐기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그리고 국제적인 문화교류를 통해 세계인과 함께 호흡하는 국제적인 박물관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박물관으로서, 1946년 4월 1일 지금의 자유 공원에서 향토관(鄕土館) 소장 유물을 인수하여 개관하였다. 초대 관장으로 이경성(李慶成)이 취임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박물관 건물이 소실되었다. 그러나 소장유물과 국립박물관 및 국립민족박물관에서 대여 · 전시 중이던 유물을 안전하게 소산시켰다. 1953년 휴전 성립 후 송학동에 위치한 현 인천문화원(구 제물포구락부)으로 이전하여 이듬해 4월 1일 복관하였다. 1990년 5월 4일 기존 박물관의 노후 · 협소로 인하여 현 부지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러 있다. 1995년에는 인천광역시립박물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2006년에는 리모델링하여 재개관되었다.
대지 9,753㎡, 연건평 2,692㎡, 지하 1층, 지하 2층 규모의 건물에 5개의 상설전시실과 1개의 기획전시실, 야외전시장에서 다양한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또 영상시설을 갖춘 200여석의 대강당인 석남홀, 각종 회의 및 소규모로 이루어지는 박물관 교육장소인 세미나실, 박물관 소장유물을 검색할 수 있는 정보검색실, 박물관 소장 도서, 도록 등 문헌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열람실 등이 있으며 그밖에 자원봉사실, 뮤지엄샵 등이 있다.
1946년 개관 후, 지역 박물관이라는 특성에 따라 주로 인천 지역의 문화 유적을 조사하고 복원하여 『고적(古蹟)』이라는 조사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간하기도 하였다. 1965년부터 2년간 국립중앙박물관과 합동으로 경서동 녹청자 도요지를 발굴 조사하였고, 1993년 유구 확인 재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1995년부터 2년간 중구 영종도 송산리에서 서울시립대학교 박물관과 합동으로 송산리 선사 유적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신석기시대 주거 형태를 규명하였다. 1993년 청소년박물관교실 및 토요박물관교실을 개설하여 인천 지역의 많은 청소년에게 지역 문화 유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등 사회 교육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약 4,700점의 소장 유물 중 약 750점을 총 6개의 전시실에서 토기 및 도자기와 근대 개항 관련 유물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제1역사실에서는 선사시대로부터 고려 말까지 인천의 주요 유적과 유물을 전시하였다. 계양구 동양동에서 발굴 조사된 삼국시대 초기의 토광묘를 비롯하여, 인천의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인주이씨 가문의 ‘이자연 묘지명’ 등의 다양한 자료를 볼 수 있다. 또한 경서동 출토 녹청자를 비롯하여 강화 선두리 출토의 도기와 창후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도자류를 통하여 고려시대 도자문화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제2역사실에서는 조선시대부터 8.15 광복 이전까지 인천의 자료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남동구 도림동 파평윤씨 소남종택의 고문서가 있고 또한 1883년 개항을 했던 인천을 통해 시련의 한국근대사를 볼 수 있다.
공예실에는 삼국시대 토기로부터 고려청자를 거쳐 조선백자와 분청사기, 그리고 철화와 청화백자가 전시되어 있다. 또한 조선 시대에 제작된 불상과 보살상 각 1구씩과 중국 명대에 제작된 청동관음보살상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조선후기 사대부가의 여러 목제품도 볼 수 있다.
서화실에는 조선시대 주요 작가의 작품과 서예 명품을 볼 수 있다. 도교와 불교 관련 인물을 그린 도석인물화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사대부와 화원 화가가 그린 문인화, 산수화, 조선후기 유명했던 민화 등이 전시되고 있다. 특히 강세항, 김홍도, 이하응, 정수영과 같은 작가의 작품들이 눈여겨 볼만하다. 또한 대각국사 의천의 탑비와 북관대첩비의 완전한 탁본도 있다.
기증실에는 1946년 개관 때로부터 현재까지 우리 박물관에 기증, 기탁된 유물을 선별하여 전시하였다. 특히 우현 고유섭의 유품과 주요 저작물을 비롯하여, 서구 공촌동에서 출토된 숙의문씨 묘지석 2매 등 귀중한 유물들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