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지화(志和). 전라도 흥성(興城) 출신. 선계(先系)에 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신분이 한미한 집안이었던 것 같다. 세자 이방석(李芳碩)의 인친(姻親)이다.
1380년(우왕 6) 문과에 급제한 뒤, 공양왕 때에 경력(經歷)으로 있으면서 이초(李初)의 옥(獄)에 연루된 우현보(禹玄寶)·우홍수(禹洪壽) 부자와 정몽주(鄭夢周) 등을 맹렬히 공격하였다.
특히 우현보·우홍수 부자에게는 가정만 생각하고 국가와 생민(生民)을 생각하지 않으며 민전(民田)을 점탈하였다고 탄핵하였다. 1392년(공양왕 4) 이성계 추대에 참여하여 개국공신 3등으로 교서감(校書監)에 임명되고, 이어 흥성군(興城君)에 봉해졌다.
1395년(태조 4) 간관을 거쳐 1398년 충청도관찰출척사(忠淸道觀察黜陟使)를 역임하였으나, 이 해 8월에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에 연좌되어 죽었다. 죄명은 이방석의 인친으로 이방석을 끼고 종친을 모해하였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