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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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각 고을의 객사(客舍)에 봉안한, ‘殿(전)’자를 새긴 나무 패.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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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각 고을의 객사(客舍)에 봉안한, ‘殿(전)’자를 새긴 나무 패.

내용

왕을 상징하는 일종의 위패(位牌)였다. 이는 서울에 중국 황제를 상징하여 봉안되어 있었던 궐패(闕牌)를 모방하여 지방에 왕권의 지배를 표방하던 의물(儀物)이었다.

동지·신정(설) 및 국왕의 탄일 조하(朝賀)와 기타 하례의식이 있을 때 수령 이하의 관원과 신민들이 이를 모시고 경배하였다. 전패는 국왕의 상징물이었으므로 그 보관 및 관리가 매우 엄격하였다.

이를 훔치거나 훼손하는 자는 대역죄에 해당되어 본인은 물론 일가족까지 처형되었고, 그 고을은 10년간 혁파되어 이웃 고을에 병합되며 수령은 파면되었다. 이 때문에 수령에게 원한을 가진 자들이 그를 축출하기 위하여 고의로 전패를 훔치거나 훼손하는 일도 있었다.

1662년(현종 3)에는 회덕현과 연천현에서 전패 분실사건이 일어나 두 고을이 폐지되어 이웃 고을에 합병되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지방행정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되어 1663년부터 고을 혁파법을 폐지하였고, 1671년에는 가족연좌법도 폐지하게 되었다. 1796년(정조 20)에는 홍산현(鴻山縣)의 전패도난사건을 계기로 수령을 파면하는 규칙도 완화되었다.

참고문헌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대전회통(大典會通)』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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