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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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인물
해방 이후 「목석같은 사나이」, 「대머리 총각」, 「육군 김일병」 등을 만든 작곡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40년
사망 연도
1987년
출생지
경상남도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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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목석같은 사나이」, 「대머리 총각」, 「육군 김일병」 등을 만든 작곡가.
내용

경상남도 진주출신. 진주사범학교 병설중학교 3학년 때 밴드부원이 되면서 음악에 심취하기 시작하였으며, 진주사범학교 2학년 때 「관악 5중주」를 작곡하여 문교부 주최 경연대회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제주도의 오현학교에서 브라스밴드부를 지도하고 있을 때 4월혁명을 상징하는 음악인 「혁명행진곡」을 발표하였다가 ‘혁명'이라는 제목 때문에 곤란을 겪기도 하였다.

1961년 경희대학교 음악과에 진학하였으며, 지도교수 김희조(金熙祚)의 추천으로 MBC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중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63년 동아일보사 주최 음악콩쿨 작곡부문에서 관현악「추방된 지역에서」라는 작품으로 입상하였으며, 1966년 문화공보부 주최 건전가요 무궁화상부문에서 장려상을 수상하였다.

또 같은 해 동양방송국 주최 가요대상에서 「뜨거워서 싫어요」라는 가요로 주제가상을 수상하였다. 히트송으로는「목석같은 사나이」·「대머리 총각」·「육군 김일병」 등의 명랑한 노래가 많으며, 혼이 없는 왜색풍의 가요는 작곡하지 않았다.

국제가요제에서 「곡예사의 첫사랑」으로 입상하였으며, 1974년 「화가 이중섭」과 1979년 「돛대도 아니달고」로 대종상(음악 부문)을 수상하였다. 1983년 극영화 「일송정 푸른솔」의 음악녹음 때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동원되기도 하였다. 800여곡의 대중가요와 500여편의 영화음악 작품을 남겼다.

참고문헌

「한국연예인물사」(황문평, 『예술세계』5,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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