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호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홍문관부제학, 호조판서,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서계(西溪)
  • 자인(子仁)
  • 시호효간(孝簡)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하동(河東)
  • 사망 연도1563년(명종 1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지중추부사
  • 출생 연도1486년(성종 1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호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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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홍문관부제학, 호조판서,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자인(子仁), 호는 서계(西溪). 정흥인(鄭興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인지(鄭麟趾)이고, 아버지는 호군 정상조(鄭尙祖)이며, 어머니는 안온천(安溫泉)의 딸이다. 선조의 외할아버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19년(중종 1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의정부사인에 재직 중, 홍우룡(洪遇龍)을 심문할 때 담당관인 사헌부집의 오결(吳潔)의 집에까지 가서 구제하다가 1531년경상도 곤양에 장류(杖流)되었다. 이듬해 성균관대사성이 되었으며, 다음해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부승지·홍문관부제학을 거쳐 1552년(명종 7) 호조판서가 되었다. 이 때 모리배와 결탁하여 방납(防納)하여 그 이익을 나누어 차지하고, 또 상인과 공모하여 각 관청에 납곡(納穀)하고, 예빈시(禮賓寺)의 전복(典僕)을 왜관고직(倭館庫直)에 임명하여 은냥(銀兩)을 무역하였다.

또한, 국고물(國庫物)의 도절범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죄과를 눈감아주는 등 비루한 행동이 많아 양사로부터 탄핵을 받았으나 중종은 파직에 그치게 하였다. 1559년 지중추부사에 오르고, 수릉(守陵)의 공로가 있다 하여 숭정대부에 승자(陞資)되었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호보(號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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