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운초(芸樵). 평안남도 평양 기림리에서 정봉주(鄭奉周)와 길정운(吉正運)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7년 평안북도 선천군 심천면으로 이주하였으며, 선천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37년 신의주제1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1942년 중화민국 남경국립중앙대학교(南京國立中央大學校)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남경국립중앙대학교 이학원(理學院) 생물학계에서 1944년까지 수학하였다.
1942년부터 1946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징모처 제3분처 한교(韓僑)전지공작원, 중화민국 제3전구(第三戰區) 제1정진유격종대(第一珽進遊擊從隊) 사령부 대일책반(對日策班) 공작대원 등으로 활약하며 독립운동에 기여하였다.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생물학과에 입학, 1950년에 졸업하였고, 1970년 서울대학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진주농과대학 전임강사 및 조교수, 1953년부터 1989년까지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38년간 후진 양성과 식물분류학 분야의 연구활동에 전념하였으며, 한국의 관속식물과 담수조류에 대한 180여 편의 논문 및 저서를 출판하여 한국 생물학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또한, 한국식물학회·한국식물분류학회·한국육수학회·한국환경생물학회·한국생물과학협회 등의 회장, 학술원 정회원 및 자연 제2분과 위원장, 자연보호중앙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독립유공표창, 하은생물학상, 교육근속30년표창, 국민훈장 동백장·모란장 및 애족장, 한국출판문화상(저작 부문), 한국과학기술도서상(저술 부문), 환경청 공로표창 등을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동식물도감』9 식물편(담수조류)(1968), 『한국식물분류학사개설』(1986), 『정영호식물학논선』1∼7집(1989) 등이 있다. 1994년 3월 17일 타계하여 대전 국립묘지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