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00년 동안 제주도 행정구역의 하나로서 정의현의 도읍지인 정의고을에 있는 성이다.
제주도는 1416년(태종 16) 이래 섬의 방어를 탄탄히 하기 위하여 그 행정구역이 제주목 · 대정현 · 정의현 등으로 나누어져 왔다. 곧, 한라산 북쪽인 지금의 제주시는 제주목이었고, 산의 남쪽인 서귀포시는 둘로 나누어져 그 동쪽은 대정현, 서쪽은 정의현이었다.
정의현의 도읍지는 본래 성산읍 고성(古城)이었는데 너무 구석지고 왜구의 침범이 잦았으므로 1423년(세종 5)성읍으로 옮기게 되었다.
정의현의 고을인 성읍의 정의성(旌義城)은 그 둘레가 2, 986척, 높이가 13척으로, 동문 · 서문 · 남문이 있었다. 동 · 서 · 남 세 곳에 성문이 있었음은 목사 이형상(李衡祥)의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에 보이는 정의조점(旌義操點: 정의고을에서 조련하는 모습) · 정의양로(旌義養老: 정의고을에서 노인잔치를 베푸는 모습) · 정의강사(旌義講射: 정의고을에서 활쏘기 훈련을 하는 모습)라는 그림 속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정의성은 제주목의 제주성, 대정현의 대정성과 함께 5세기 동안 정의고을을 둘러쌌던 성이다. 제주성은 제주 시가지 내에, 대정성은 대정읍 보성 · 인성 · 안성에 고을마다 자리하였듯이, 정의성은 옛 고을 성읍마을에 있었는데, 오늘날에도 각각 그 성터가 일부 남아 있다.
정의성은 제주성 · 대정성과 마찬가지로 동 · 서 · 남 세 곳의 성문 앞에 돌하루방이 세워졌다. 정의성문 앞에 세워진 돌하루방은 유달리 ‘벅수머리’라고 불려왔는데, 지금은 12기가 남아 제주도 돌하루방의 맥락을 장승에서 찾을 수 있다는 귀중한 단서를 그 명칭에서부터 제시하고 있다.
정의성 내에는 현감이 집무하였던 일관헌(日觀軒)과 정의향교 및 여러 관서들이 들어서 있었다. 또한, 1964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성읍리 느티나무 및 팽나무와 1979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된 제주 성읍마을 객주집 등 다섯 채의 국가지정유산 가옥이 있다.
정의성은 전국에 알려진 민속마을(제주성읍마을: 국가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이면서 옛고을의 성으로, 제주도의 다공질현무암(多孔質玄武岩)으로 쌓았다는 점에서 역사적 ·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