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어록』을 남긴 승려.
이칭
  • 하의, 荷衣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1852년(철종 3)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779년(정조 3)
  • 출생지전라남도 영암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송찬우 (동국역경원, 한문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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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어록』을 남긴 승려.

생애 및 활동사항

선승(禪僧). 성은 임씨(林氏), 호는 하의(荷衣). 전라남도 영암 출신. 어머니가 보배구슬을 받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어려서는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여 마치 전생에 선근(善根)을 많이 닦은 듯하였다.

17세 때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두륜산 대흥사(大興寺)로 들어가 백련(白蓮)을 은사로 하여 삭발하였고, 완호(玩虎)의 법을 이었다.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 두루 편력하기를 좋아하여 남으로는 달마사(達摩寺), 북으로는 덕룡암(德龍庵)을 순방하였고, 동으로는 능가사(楞伽寺), 서로는 첨찰암(尖察庵)에서 배웠다.

사방으로 운수행각을 끝내자 굳게 문을 잠그고 선의 이치를 30여 년 동안 궁리하였다. 그의 문전에 출입한 도반(道伴)이 많았으나, 다만 호의(縞衣)와 초의(草衣)만 마음이 계합하여 서로 아끼는 사이가 되었는데, 당시 이들을 가리켜 삼의(三衣)라 불렀다.

체구가 장중하고 말은 묵중하여 일체 세속사를 입에 올리지도 비난하지도 않았으나, 입을 열어 게송을 읊으면 구슬을 연이은 듯하였고, 설법하고 학인을 지도할 때에는 조금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한다. 1852년 6월 11일 나이 73세, 법랍 58세로 대흥사 도선암(導船庵)에서 입적하였다. 문집으로 『어록(語錄)』 1권이 있다.

참고문헌

  • - 『동사열전(東師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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