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만석(曼碩), 호는 복재(復齋). 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정추(鄭樞: 일명 公權)이며, 조선개국공신 정탁(鄭擢)의 형이다.
1376년(우왕 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19세로 춘추관검열이 되고, 대간·응교·사예를 거쳐 대호군에 이르고, 1389년(공양왕 1) 병조판서에 승진되었으며, 1391년 이조판서를 거쳐 정당문학에 이르렀다. 당시 중국에 보낸 표전문(表箋文)은 대부분 그가 지었다.
조선개국 후 개국공신 1등에 서훈되고, 첨서중추원사(簽書中樞院事)로서 서원군(西原君)에 봉하여졌다. 1394년(태조 3) 정당문학이 되고, 다시 예문춘추관태학사가 되어 정도전(鄭道傳)과 같이 『고려사』를 편찬하고, 그 서문을 썼다.
1395년 태조 이성계의 고명(誥命) 및 인신(印信)을 줄 것을 청하러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가, 명나라 황제가 내려준 옷을 입지않은데 대한 국문을 두려워하여 도망하다 잡혀, 대리위(大理衛)에 유배도중 죽었다. 글씨를 잘 쓰고 문집으로 『복재유고』가 있다. 시호는 문민(文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