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고원 출신. 1935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1939년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한 뒤, 개성의 고려여학교·안악고등여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였다.
광복 후 잠시 미군정청 사법부에서 번역사로 일하다가 1947년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하였다. 월간 국제보도 기자, 경향신문 문화부기자, 서울일일신문 조사부장을 거쳐 한국 최초의 여류논설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63년부터 1977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이대학보사 주간 및 출판부장직을 담당하였다. 학교 외의 사회활동으로, 1962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상임이사와 부회장을 역임하였고, 1968∼1985년 주부클럽연합회 회장직을 맡았다.
1969년과 1971년 세계여기자작가대회에 한국대표로 참가하였고, 1970년 세계여기자작가협회 한국지부를 창설하여 회장을 맡았다. 1977∼1988년 모교인 숙명여자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어린 시절 독립 운동가의 집안에서 자랐고 6·25 때 남편을 잃었다. 이와 같은 민족적 비극 속에서 생활하면서도 남다른 민족의식과 강인한 의지력, 검소하고 철저한 절약정신을 지닌, 한국여성사에 길이 남을 모범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