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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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문자
인물
일제강점기 때,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이후, 『조선말큰사전』 편찬에 참여한 국어학자 · 독립운동가.
이칭
석인(石人)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4년(고종 41)
사망 연도
1952년
본관
나주(羅州)
출생지
경기도 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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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이후, 『조선말큰사전』 편찬에 참여한 국어학자 · 독립운동가.
내용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석인(石人). 경기도 파주 출신. 아버지는 규원이며, 어머니는 죽산박씨이다. 삼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나 1917년 4월 서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1년 3월 4년제를 졸업하였다. 1918년 3월 안동권씨인 정옥과 혼인하였다.

1925년 3월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함경남도 함흥에 있는 영생고등여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3년 뒤인 1927년 5월 미국으로 유학하여 우스터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1931년 다시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과 과정을 마친 다음, 1931년 9월 돌아와 영생고등여학교에서 다시 교편을 잡았다.

1941년 6월 영생고등여학교를 떠나 조선어학회(지금의 한글학회)에서 『조선말큰사전』 편찬의 일을 맡아보다가, 1942년 9월에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홍원경찰서에 구금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아 함흥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45년 8월 광복과 더불어 조선어학회로 돌아와 『조선말큰사전』 편찬을 다시 시작하는 한편, 연희대학·중앙대학·홍익대학·동국대학 등에서 국어학 강의를 맡았다. 1950년 6·25전쟁으로 고향에서 피신하였고,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갔다가 1952년 서울로 돌아와 『조선말큰사전』 속간을 위하여 전념하다가 같은 해 11월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한자 안쓰기 문제』(어문각, 1946), 『중등국어독본』(김원표 공저, 한글사, 1946), 시가집 『아름다운 강산』(신흥국어연구소, 1946), 『고어독본』(연학사, 1947), 『조선고어방언사전』(김병제 공저, 일성당서점, 1948)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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