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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례(祭禮)에서 사용되는 그릇 및 관련 도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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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례(祭禮)에서 사용되는 그릇 및 관련 도구들.
내용

조선시대 이후 제례는 크게 관을 중심으로 행해졌던 것과, 일반의 사사로운 집단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나누어진다.

관을 중심으로 한 공공제례(公共祭禮)에는 왕가와 종묘, 관가와 대성전(大成殿) 및 향교, 그리고 유림(儒林)과 서원 등의 제례가 포함된다.

반면에 사사로운 집단을 중심으로 한 사사제례(私事祭禮)에는 일반적인 조상숭배의 제례가 포함된다. 공공제례의 경우 지배계급의 권위를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그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사사제례의 경우 권위보다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조상을 추모하거나 애경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비교적 단순한 절차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따라 제기도 공공제례의 경우 그 형태가 다양하고 가지 수도 많은 데 비하여, 사사제례의 경우 간단하면서도 형태가 몇 가지 안 된다.

제기는 용도에 따라 술과 물을 다루는 데 쓰이는 제기, 제물이나 제찬과 같은 제수(祭需)를 담는 제기, 그리고 그 밖의 것으로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공공제례와 사사제례의 제기의 차이도 그 형태와 제수의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1) 종묘제례 때의 제기

공공제례의 제기는 왕가의 종묘제례의 것으로 대표된다. 종묘제례에 쓰이는 제기 가운데, 제수를 담는 것을 제수와 함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네가지의 밥을 담는 제기로는 보(簠)와 궤(簋)가 있다. 보에는 쌀밥(稻)과 기장밥(梁)을 담으며, 궤에는 메기장밥(黍)과 피밥(稷)을 담는다.

보는 겉은 직사각형이나 안은 둥글게 패어 있으며, 궤는 안과 겉이 타원형으로 되어 있다. 모두 굽이 달리고 뚜껑이 딸려 있다. 재료는 놋쇠[鍮]로 되어 있다.

국을 담는 그릇으로 등(㽅) 있다. 이 국은 소금도 치지 않고 양념도 하지 않은 것으로서, 소고깃국[牛羹]·양고깃국[羊羹]·돼지고깃국[豕羹]의 세 가지가 있다. 이 국은 오미(五味) 가운데 한 가지 맛도 나지 않는 것으로, 오래된 옛날의 국이라고 한다. 또한 등은 간료(肝膋:구운 간)를 담아 올리는 데에도 쓰인다. 생김새는 단지 모양이며, 재료는 놋쇠로 되어 있다.

또 양념을 한 국을 담아 올리는 제기로 형(鉶)이 있다. 형에 담는 국은 짐승의 고기에 무(菁根)를 넣고, 소금이나 양념을 친 국으로서, 형갱(鉶羹)·대갱(大羹) 또는 화갱(和羹)이라고 부른다.

종류로는 소고깃국[牛和羹]·양고깃국[羊和羹]·돼지고깃국[豕和羹]의 세 가지가 있다. 재료는 놋쇠로 되어 있으며, 단지 모양에 양옆으로 손잡이가 달려 있다. 그러나 중국의 형은 아래에 세 다리가 달리고 뚜껑이 있다.

조(俎)는 도마와 같이 생긴 제기로서, 양·소·돼지의 날고기인 희생(犧牲)을 올려놓는 데 쓰인다. 이 희생은 성(腥)이라고 하며 우성(牛腥)·시성(豕腥)·양성(羊腥)으로 구분된다. 이렇게 날고기를 제사에 사용하는 것은 예로부터의 관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즉, 아득한 옛날 사람들이 화식을 할 줄 모르고 생식하던 때의 관습을 되살렸던 흔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희생 가운데 우성의 경우 검은 소(黑牛)의 것이 원칙이었으나, 1638년(인조 16) 이후에는 구하기가 어려워 누런 소(黃牛)로 대신하였다고 한다.

이 희생을 올려놓는 제기를 목생갑(木牲匣)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또한 조는 삼숙(三熟)이라고 하여, 소와 양의 창자[腸]·밥통[胃]·허파[肺]와 돼지의 비계(豕膚)를 익혀서 올려놓는 데도 쓰이고 있다.

이것을 천조(薦俎)라고도 하며, 그 육식을 특생(特牲)·삼헌염(三獻爓) 또는 일헌숙(一獻熟)이라고도 한다. 모두 헌작할 때 하나씩 바치는 제물들이다. 조는 양쪽에 붉은 칠(朱漆)을, 중간에 검은 칠(黑漆)을 한다. 변(籩)은 대나무를 얽어 만든 제기로서, 과일과 떡[餠]·포(脯) 등을 담는 데 쓰인다.

과일로는 밤(乾栗)·대추·호도·잣(松子)·비자(榧子) 또는 연자(蓮子)의 다섯 가지를 변에 담아 올린다. 떡은 여섯 가지 가운데 분자(粉餈)·구이(糗餌)·백병(白餠)·흑병(黑餠)의 네 가지를 변에 담아 올린다. 분자는 인절미라고 부르는 것으로, 찹쌀을 쪄서 쳐 길다랗게 한 후 네모나게 잘라서 콩가루를 묻힌 것이다.

구이는 쌀가루를 물에 반죽하여 둥글게 빚어서 삶고 콩가루를 묻혀서 둥글게 만든 것이며, 백병은 흰떡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쌀가루를 물에 반죽하여 잘 삶아 네모나게 자른 것이다. 그리고 흑병은 수숫가루를 물에 반죽하여 잘 삶고 네모나게 자른 것이다. 포로는 사슴고기포[鹿脯]와 어포를 사용한다. 어포는 어숙(魚鱐)이라고도 하며, 대구어포를 사용한다.

그 밖에 변에 담는 것으로는 형염(形鹽)이라고 하여 소금이 있다. 이렇게 하여 모두 12개의 변을 사용한다. 생김새는 밑에 높은 굽이 달린 사발과 같다. 두(豆)는 단지 모양으로 생긴 제기로서, 나무로 만들었다. 변과는 달리 이 제기는 물기가 있는 제물을 담는 데 쓰인다.

우선 두에 담는 제물로는 떡 가운데에서 참식(糝食)과 이식(酏食)이 있으며, 그 밖에 젓갈[醢]·김치 종류 등이 있다. 참식은 쌀가루를 익혀, 소·양·돼지의 고기를 넣어서 섞은 다음에 네모로 잘라 기름에 전을 부친 떡이다. 이식은 쌀가루를 술에 반죽하여 둥글게 빚어서 잘 찌고 그릇 뚜껑 모양으로 다시 빚은 떡이다.

젓갈은 네 가지 종류로서, 녹해(鹿醢:사슴고기나 소고기로 담근 젓갈이나 장조림)·치해(雉醢:꿩고기나 닭고기로 담근 젓갈이나 장조림)·어해(魚醢)·담해(醓醢:장조림) 등이다. 김치나 야채로는 청저(菁菹:순무김치)·근저(芹菹:미나리김치)·구저(韮菹:부추김치)·길경(桔梗:도라지김치) 등이다.

그 밖에 두에 담아 올리는 것으로는 돈박(豚拍)과 비절(脾切·脾折)이 있는데, 돈박은 돼지갈비이며, 비절은 소의 처녑을 말한다. 이렇게 해서 두도 변과 함께 모두 12개가 쓰인다.

그 밖에 제물을 담는 제기로는 모혈을 담아서 제상에 올리는 모혈반(毛血槃)이 있다. 재료는 구리로서, 모혈을 올리는 뜻은 순결을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鼎)이라고 하여 소·양·돼지의 고기를 끓이는 세발 달린 제기가 있으며, 다리가 달리지 않은 부(斧)와 확(鑊)이 있다. 이것들은 제물을 요리하는 데 쓰이는 제기들이다.

다음에 술과 물을 다루는 제기로는 작(爵)·계이(鷄彛)·조이(鳥彛)·가이(斝彛)·황이(黃彛)·희준(犧罇)·상준(象罇)·산뢰(山罍)·착준(著罇)·호준(壺罇)·용찬(龍瓚) 등이 있다. 이 가운데에서 작과 산뢰는 4계절 모두 쓰이나, 계이·조이·희준·상준은 봄과 여름의 제사에만, 가이·황이·착준·호준은 가을과 겨울의 제사에만 사용된다.

작이란 구리로 만든 술잔의 하나로, 위로는 양쪽에 자루가, 아래로는 세 개의 다리가 달려 있다. 계이와 조이도 구리로 만든 술잔의 하나로, 겉에 닭과 봉황을 새겨 넣었으며, 각각 명수(明水:정화수)와 울창(鬱鬯:일종의 향초로서, 검은 기장과 섞어서 빚은 향주도 같은 이름으로 쓰임)을 담는 데 쓰인다. 모두 잔받침으로 받쳐놓도록 되어 있으며, 잔에는 뚜껑이 달려 있다.

희준과 상준은 소와 코끼리 모양을 한 잔으로 되어 있거나, 같은 모양의 잔받침대 위에 잔을 올려놓도록 만들어진 제기인데, 구리로 만들었다. 잔에는 뚜껑을 덮게 되어 있다. 희준에는 명수와 예재(醴齊:단술, 醴酒라고도 한다)를 담으며, 상준에는 명수와 앙재(醠齊, 막걸리·醠酒라고도 한다)를 담는다.

가이와 황이도 술잔의 하나로, 겉에 벼이삭과 눈 두개를 그린 제기로 각각 명수와 울창을 담아놓는 데 쓰인다. 모두 구리로 만들었으며, 잔을 잔받침대로 받쳐놓게 되어 있다. 착준과 호준은 구리로 되어 있으며,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단지 모양의 제기이다. 착준에는 명수와 예재를, 호준에는 명수와 앙재를 담는다.

산뢰는 구리로 되어 있는 단지 모양의 술잔으로, 겉에 산과 구름문양을 그린 제기이다. 이 술잔을 제사에 사용하는 뜻은 구름과 우레의 넓은 덕택이 마치 재왕의 덕이 모든 신하에게 미치는 것과 같다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에는 현주(玄酒:물을 가리키는 말로서, 물의 빛이 검게 보이므로 현주라고 한다. 또, 옛날에는 술이 없어서 제사에 물을 썼기 때문에 현주라고 부른다)를, 또다른 하나에는 청주(淸酒:제사의 종헌 다음에 여러 신하들이 올리는 술로서, 제사에 쓰이는 술 가운데 가장 맑은 술을 말한다)를 담는 데 쓰인다.

용찬은 구리로 만든 술잔이다. 잔의 양쪽에 용머리와 자루를 달아 잔받침대 위에 놓게 되어 있다. 울창을 담아 땅에 쏟아붓는 데 사용하며, 용머리를 통하여 술이 나오게 되어 있다.

제수를 담는 제기, 물과 술을 담는 제기 외에도 등잔·촛대·향로·향합·축점(祝坫:축문을 올려놓는 잔)·관지통(灌地筒:5첩으로 된 통으로, 제사 처음에 울창을 용찬에 따라 땅에 부을 때 사용하는 제기)·비(篚:대나무로 만든 광주리로, 폐백을 담는 데 쓰임.)·필(畢:고기를 집어올리는 데 쓰이는 집게처럼 생긴 도구로서, 가시나무로 만듦.)·비(匕:가시나무로 만든 숟가락)·난도(鑾刀:희생을 잡을 때 사용하는 칼로, 자루에 방울 세 개, 칼등에 방울 두 개가 달려 있다)·용작(龍勺:술을 떠서 부을 때 사용하는 도구) 등의 제기가 있다.

(2) 민간제사 때의 제기

민간에서 지내는 제사의 경우, 중국식의 제기와 옛날 음식이 중심이 된 공공제례의 제기와는 달리 비교적 그 종류와 생김새가 단순하다.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예서의 하나인 ≪사례편람 四禮便覽≫에 나와 있는 제기와 요즘에 사용하고 있는 제기를 비교하여보면 다음과 같다.

제물이나 제수를 담는 제기로는 우선 밥을 담는 반기(飯器)가 있다. 형태는 일상생활에서 꼭지바리라고 불리는 그릇과 같은 모양의 제기로서, 낮은 굽이 달리고, 뚜껑이 있다. ≪세종실록≫ 오례지(五禮志)의 도해에 나오는 반발(飯鉢)과 똑같은 형태일 것으로 보인다.

국을 담는 제기로는 ≪사례편람≫에 갱기(羹器)가 있다.

≪세종실록≫에 보이는 갱접(羹楪)과 같은 것으로 보이는데, ≪사례편람≫에는 뚜껑이 있다고 되어 있으나 ≪세종실록≫에는 뚜껑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일반적으로 국그릇으로 대접을 사용하고 있으며, 위에서 말한 갱기나 갱접은 탕기(湯器)라고 하여, 탕을 담아 올리는 데 사용되고 있다.

형태는 사발에 좀 높은 굽이 달려 있으며, 뚜껑이 없다. 그리고 국수를 담아 올리는 데 사용하는 제기로 ≪사례편람≫에 면기(麵器)가 보이는데, 사발[椀]을 사용한다고 하였으며, 떡을 담아 올리는 병기(餠器)로는 대접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그 밖에도 ≪사례편람≫에 의하면, 대접은 적(炙)을 담는 적기(炙器)와 적을 물리는 데 사용하는 철적기(徹炙器), 그리고 채소로 된 반찬을 담는 소채기(蔬菜器)로도 사용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떡은 떡틀, 적은 적틀이라고 하여 낮은 굽이 달린 네모의 나무로 된 모판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세종실록≫에 의하면 소채기는 소채포해접(蔬菜脯醢楪)으로, 적기는 적접(炙楪)으로 되어 있으며, 따로 찬접(饌楪)이 나타나고 있다. 이 찬접은 ≪사례편람≫에 나타나는 장기(醬器)일 것으로 보이는데, 장기는 종지(鍾子)를 사용한다고 하였다.

물고기나 고기를 담는 어육기(魚肉器)로는 사발 또는 접시를 사용한다고 하였으며, 그 밖에 접시 종류의 제기로는 초를 담는 데 쓰이는 초접(醋楪)과 숟가락·젓가락을 올려놓는 시저접(匙筯楪)이 있다. 이 시저접은 ≪세종실록≫에는 시접(匙楪)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과일 담는 과기(果器), 포를 담는 포기(脯器), 젓갈을 담는 해기(醢器)가 ≪사례편람≫에 나타나고 있다.

그 밖에 수조시(受胙匙:수조할 때에 사용하는 숟가락)·수조반(受胙盤:수조할 때에 사용하는 제기로 접시를 사용함)·수조석(受胙席:수조할 때에 앉는 자리)·숟가락[匙]·젓가락[匙筯楪]이 있으며, 제수를 장만할 때 사용하는 제기로 가마솥[釜]·시루[甑]·구기〔勺〕·둥근 광주리〔篚〕·모난 광주리〔筐〕·도마〔俎板〕·주발〔椀〕·동이〔盎〕·소반〔盤〕·칼〔刀〕·화로·적쇠〔炙鐵〕 등이 있다.

술과 물을 다루는 제기로는 ≪사례편람≫에 술병, 술주전자[酒注], 술잔과 잔대(盞盤), 물병[玄酒甁], 모반(茅盤:띠풀을 묶은 茅束을 담는 제기로서, 네모난 바리), 술상[酒架] 등이 보인다.

그 밖에 ≪사례편람≫에 보이는 제기로는, 교의(交椅)·좌욕(坐褥:교의 위에 까는 천)·제상(大卓)·좌면지(座面紙:제상 위에 까는 기름칠한 종이)·소탁(小卓)·대상(大牀:中排床)·행주수건[拭巾]·향안(香案)·향로(香爐)·향합·향·향시(香匙)·부젓가락[火筯]·촛대·초·역막(帟幕:平帳이라고도 하는 휘장)·병풍[屛]·발[簾]·상자[笥]·개좌(蓋座:신주를 사당에서 내어 모실 때 받치는 대)·축판(祝板:축문을 받치는 판)·축문지(祝文紙)·벼루[硯]·붓·먹·배교(环珓:날짜를 점치는 도구)·배교반(环珓盤)·설거지통[潔滌盆]·횃불[炬]·세숫대야[盥盆]·동이받침[盆臺]·세수수건[帨巾]·수건틀[巾架]·목욕통[沐浴盆] 등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제상·교의·향안·향합·촛대·축판 등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제기로서 위의 것들을 따로 준비하지는 않고 있다.

제기는 그 재료가 나무·사기·놋쇠로 되어 있다. 아마도 나무로 만든 제기는 가볍고 운반하기가 쉬워 주로 묘제(墓祭)에 많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집에서는 주로 사기와 놋쇠로 된 것을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집에서 지내는 제사의 경우 목기(木器)의 사용여부를 묻는 제자의 질문에 송시열(宋時烈)은 검소하고 값이 비싸지 않아 무방하다고 대답한 것으로 보아, 나중에는 이 목기도 집에서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놋쇠 제기는 비교적 부유한 계층에서 많이 사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 가격도 물론 높거니와, 그것을 깨끗이 닦아 사용하는 데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제기가 시중에 나타나고 있다.

제기는 일반적으로 사당에 보관하도록 되어 있다. 주희(朱熹)의 ≪가례≫에 의하면, 제기는 목적에 따라 따로따로 준비하여 사당 밖에 주고(廚庫)를 세워, 제물을 장만하는 신주(神廚)와 함께 의물(衣物)·유서(遺書)와 제기를 각각 보관하여, 자물쇠를 채워 다른 목적에 사용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에 조선 중기의 학자 신의경(申義慶)이 지은 ≪상례비요 喪禮備要≫에 의하면, 가난하여 집터가 좁을 경우에는 1칸 사당 안의 서쪽에는 유서와 의물을, 동쪽에는 제기를 궤에 넣어 보관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곡례 曲禮≫에 의하면 군자는 가난할지라도 제기를 일상생활에 사용하지 말 것이며, 남에게 빌려서 사용하지 말 것이며, 제기를 먼저 마련하지 않고서는 연기(燕器:일상생활에 사용하는 그릇)를 장만하지 말라고 하였다. 또한 제기를 못쓰게 되면 땅에 파묻으며 아무 것이나 제기로 대용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예법대로라면 군자는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제기는 팔지 못하였다. 그러나 가난하여 제기를 마련하지 못하였을 때는 평생 동안 썼던 것이므로 연기를 제기로 써도 무방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요즘에도 그대로 남아 있어 특별한 형태의 제기를 제외하고는 일상생활의 그릇을 제기로 대신하고 있다.

참고문헌

『세종실록(世宗實錄)』
『상례비요(喪禮備要)』
『사례편람(四禮便覽)』
『가례의절(家禮儀節)』
『종묘제기』(문화재관리국, 1976)
집필자
장철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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