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시 ()

대동여지도 / 단양, 청풍, 충주, 제천, 원주, 음성
대동여지도 / 단양, 청풍, 충주, 제천, 원주, 음성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충청북도 북단에 위치한 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충청북도 북단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은 단양군, 서쪽은 충주시, 남쪽은 경상북도 문경시, 북쪽은 강원도 영월군 · 원주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7°55′∼128°20′, 북위 36°48′∼37°15′에 위치한다. 면적은 883.45㎢이고, 인구는 13만 6138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7개 면, 9개 행정동(28개 법정동), 157개 행정리(113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충청북도 제천시 천남동에 있다.

자연환경

서부의 변성암대와 동부의 석회암대로 나누어지고 최고기의 지층으로는 선캄브리아기의 박달령 변성암이며 대석회암통이 피복되어 있고 시대미상의 천등산층(天登山層)이 부정합으로 덮여 있다.

대석회암통 위에는 서창리층(西倉里層)과 금수산 규암층이 부정합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는 다시 옥천계 지층이 부정합이나 단층으로 얹혀 있으며, 백악기 말 불국사통의 화성암류가 넓게 분포하고 있다.

동쪽에는 태백산맥이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고 북서쪽에는 차령산맥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달리고 남동쪽에는 소백산맥이 북동∼남서방향으로 뻗어 있다. 지형상으로 분류하면 중앙분지, 박달령 · 대덕산 · 구진산 연봉, 동남부 고산지, 서부산지, 중앙부 저산지 등으로 나누어진다.

중앙분지는 제천시역의 중앙부에 타원형으로 넓게 분포하는 송학화강암지대로서 침식삭박작용으로 저지화되어 제천분지를 이루고 있다.

분지의 경계는 제천시내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왕박산(王朴山, 598m)과 송학산(松鶴山, 819m)을 연결하는 선이 경계이고, 북쪽의 경계는 용두산(龍頭山, 834m) · 석기암(石機巖, 906m)의 남사면 기슭의 봉양면 구학리와 팔송 등이다.

서쪽의 경계는 시랑산(侍郞山, 691m)과 대덕산(大德山, 580m)의 동사면에 있는 봉양면 원막리 · 공전리 · 굴탄리 등이다. 남쪽의 경계는 국사봉(國師峰, 632m)과 금성면의 구룡리를 연결하는 선에서 구진산(句陳山, 481m)까지이다.

박달령(朴達嶺) · 대덕산(大德山) · 구진산 연봉은 중앙분지를 포위하고 있는 곳으로 서쪽의 박달령 · 시랑산 · 대덕산과 남쪽의 국사봉, 동쪽의 구진산 · 가창산(歌唱山, 820m)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험준한 능선지대이다.

동남부 고산지는 금수산(錦繡山, 1,015m) · 동산(東山, 896m) 등으로 100∼850m 내외의 심한 기복을 나타낸 곳이다. 서부산지는 천등산(天登山) · 인등산(人登山, 667m) · 지등산(地登山, 535m) · 부산(婦山, 780m) · 관모봉(冠某峰, 560m) · 주봉산(珠峰山, 643m) 등이 있는 험준한 산지지역이다.

중앙부 저산지는 맹자산(孟子山, 496m) · 대덕산(大德山, 563m) · 비봉산(飛鳳山, 530m)이 있는 저산성 지대인데, 금성면의 성내리와 청풍면 교리에는 대소의 카르스트 지형이 나타나고 있다.

남한강의 지류인 두학천(頭鶴川)이 제천시역을 중심으로 동서로 관류하면서 남류하는 용두천 · 하소천 · 백곡천 등과 합류하여 장평천(長坪川)을 이루어 서류하다가 봉양에서 용암천(龍巖川)과 합류하여 주포천(周浦川)을 이룬 뒤 곡류하다가 충주시 동량면에서 충주호에 흘러든다.

남한강 본류는 수산면 · 금성면 · 청풍면 일대에서 충주호에 수몰되었다.

내륙 산간분지이기 때문에 내륙성 기후를 나타내고 있어 연평균 기온 10.5°C, 1월 평균기온 -4.2°C, 7월 평균기온 26.0°C이며, 연 강수량은 1,199㎜이다.

역사

구석기 시대의 유적 · 유물이 관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송학면 포전리 점말동굴에서는 이 시대의 기후 · 환경 · 동물군 · 식물군 등을 밝힐 수 있는 유적과 석기 · 뼈 · 연모 등의 유물이 발굴되어 우리나라 홍적세의 자연환경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 밖에 한수면 사기리 · 호운리 · 황강리, 금성면 월굴리, 백운면 도곡리, 수산면 하천리에서도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 · 유물은 도곡리, 청풍면 진목리 · 황석리 · 양평리에서 약간 발견되었다. 청동기 · 철기 시대의 유물인 고인돌은 계산리 · 양평리 · 황석리 · 방흥리 · 진목리 · 사기리 등에 산재해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馬韓)에 속했으며, 4세기경에는 백제(百濟) 땅이 되었다.

뒤에 고구려(高句麗)에 속하여 나토군(奈吐郡)이라 불리었고, 청풍이 사열이현(沙熱伊縣)이라 불렸다. 5세기 말엽에는 신라(新羅)의 영토로 편입된 것으로 보이며, 가야금을 만든 우륵(于勒)이 이곳에서 출생했다고 전한다.

673년(문무왕 13)에 지금의 청풍(수몰지역) 사열산성(沙熱山城)이 증축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757년(경덕왕 16)에 나제군(奈堤郡)으로 고쳐졌고, 사열이현이 청풍군으로 개명되어 나제군의 속현으로 삭주 북원경(朔州北原京)에 소속되었다. 백운면 부수동에는 경순왕(敬順王)의 이궁(離宮)이 있었다고 전한다.

940년(태조 23)에 제주군(堤州郡)이 되었고, 992년(성종 11)에는 의천(義泉) · 의원(義原)이라는 다른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995년 지방행정 구역을 개편할 때 중원도(中原道)에 속하여 자사(刺史)가 두어졌으며, 1005년(목종 8)에 폐지되었다.

1018년(현종 9)에는 양광도(楊廣道) 충주목에 귀속되어 감무가 설치되었다. 1217년(고종 4) 거란(契丹)의 10만 대군이 박달재를 공격해 올 때 김취려(金就勵)장군은 정상(頂上)을 먼저 점령하고 좌우에 군대를 포진하여 적군을 섬멸하였다.

1258년의 몽골군(蒙古軍) 침입 때에도 충주 · 제주(堤州) · 청풍의 별초군(別抄軍)이 박달재에 복병을 두어 적군을 격파하였다. 1317년(충숙왕 4)에는 청풍현 사람 청공(淸恭)이 왕사(王師)가 되었기 때문에 군으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에는 제천으로 개명되고 현감이 두어졌다. 세조의 왕위찬탈로 단종이 영월(寧越) 땅에 유폐되자, 원호(元昊)는 이곳의 월악산(月岳山)에 귀틀집을 짓고 살면서 아침 · 저녁으로 단종이 있는 청령포를 향해 우러러 절하였다. 1660년(현종 1)에는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의 관향이라고 해서 청풍이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어 부사가 두어졌는데, 이는 충청도에 유일한 것이었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황사영(黃嗣永)은 전국의 천주교 신자들이 만든 봉양면 구학리 배론(舟論)의 천주교인 마을로 와서 토굴에 숨어 있으면서, 조선의 천주교회를 구하기 위해 흰 명주천에 글을 써서 북경(北京)주교에게 전하려다 검거되어 처형된 백서사건(帛書事件)이 있었다.

1856년(철종 7) 배론에 신학교(神學校)가 세워지고 이곳의 신자들에게 성사가 베풀어졌다. 1860년 경신박해(庚申迫害) 때 이곳으로 피신하는 신자가 늘어나자, 신학교에서는 그들의 생계를 돕기 위해 옹기를 굽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봉양면 · 백운면 · 송학면 · 청풍면의 옹기가 유명한 것은 이 때문이다.

1866년(고종 3)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프랑스 신부 9명과 신자 8,000여 명이 순교하면서 배론신학교도 폐교되고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1895년에 제천과 청풍이 각각 군으로 승격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청풍군 일원과 덕산면 10개 리가 충주군으로부터 제천군으로 병합되었다. 철도가 개설되어 제천이 교통의 요충지가 되면서 청풍은 제천군에 편입되었다. 1940년에는 제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7월 1일 덕산면 수곡리가 수산면에 편입되는 등 일부 행정구역이 변경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이 시로 승격되었고, 제천군은 제원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85년 충주다목적댐의 건설로 5개 면에 걸쳐 61개 마을이 수몰되었다. 청풍에 있던 한벽루 · 팔영루 · 금병헌 · 금남루 등의 문화유산들이 물태리로 옮겨졌다.

1987년 1월 1일 한수면의 6개 리가 중원군 동량면에 편입되었으며, 1989년 1월 1일 중원군 산척면 원월리가 백운면에, 금성면 대랑리가 제천시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에 따라 제원군이 제천시에 통합되어 새로운 제천시가 되었으며, 3월 2일에는 봉양면이 읍으로 승격됨으로써 1읍 7면 13동이 되었다. 1998년 제천시 일부 동의 통폐합이 있어 1읍 7면 9동으로 바뀌었고, 2002년에 고암동과 모산동을 신설하는 한편 동명 변경이 있었다.

유물 · 유적

선사시대의 문화유적으로는 송학면의 점말용굴을 비롯하여 충주댐의 건설로 한강유역인 한수면 사기리의 창내와 명오리의 큰 길가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굴 조사되었다. 청풍면의 양평리 · 황석리 · 광의리 · 진목리 · 도화리 · 방흥리와 한수면의 사기리 · 함암리 등 지역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을 비롯하여 청동기 시대의 유적지로 발굴 조사되어 이 지역이 선사문화의 중심적인 유적지임을 알 수 있다. 현재는 대부분이 수몰된 지역이다. 송학면 입석리에는 제천 입석리 선돌(충청북도 기념물, 2011년 지정)이 있다.

삼국시대의 유적으로는 청풍면의 교리 고분, 도화리 적석고분, 양평리 적석고분, 황석리 고분, 계산리 고분, 연곡리 고분 등이 있었으나 이 지역도 대부분 수몰되었다.

산성으로는 금성면 강저리의 성산성(城山城, 일명 동막리성), 포전리의 작성산성(鵲城山城), 청풍면의 견지산성(肩支山城), 물태리의 청풍 망월산성(충청북도 기념물, 1994년 지정) · 황석리 산성(黃石里山城), 덕산면 신현리의 월형산성(月兄山城), 봉양읍의 감암산성(甘巖山城), 삼거리의 제비랑산성(齊非郞山城), 한수면 송계리의 제천 덕주산성(충청북도 기념물, 1983년 지정)과 수산면 오치리의 오치봉수(吾峙烽燧) 등이 있다.

불교 유산으로는 장락동의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보물, 1967년 지정)을 비롯하여 두학동의 알뫼미륵입상, 한산사(寒山寺)의 석조미륵불, 복천사(福泉寺)의 석탑, 남천동에서 출토된 ‘乙巳九月十七日造’(고려 명종 15년 추정)명의 동종과, 금성면 무암사(霧巖寺)의 아미타불상이 있다.

덕산면 월악리 신륵사에는 제천 신륵사 극락전 · 제천 신륵사 삼층석탑(보물, 1999년 지정) · 아미타불상 · 대세지보살상 · 탱화 · 당간지주가 있다. 신현리의 고산사 석조관음보살좌상 · 고산사 석조나한상군, 한수면 송계리의 덕주사 석조 약사여래입상이 있다. 신륵사 극락전은 1982년, 고산사 석조관음보살좌상은 1998년, 고산사 석조나한상군은1998년, 덕주사 석조 약사여래입상은 1998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또한 봉양읍 명암리의 백련사(白蓮寺)에는 아미타불상, 송학면 시곡리에 소악사지(小嶽寺址) 삼층석탑, 장곡리에 마애불상, 수산면 하천리에 미륵불, 청풍면 물태리에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보물, 1971년 지정) · 교리사지 전탑이 있다.

또한 한수면 송계리에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덕주사 마애여래입상(보물, 1964년 지정) · 덕주사 석조약사여래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98년 지정) 등이 있다. 백운면 방학리의 경순왕 이궁터도 중요한 유적이다.

이외에도 청풍면 교리에 제천 교리 방단적석유구(충청북도 유형문화재, 2000년 지정), 수산면 능강리에 제천 정방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충청북도 유형문화재, 2001년 지정), 한수면 송계리에 제천 송계리 대불정주범자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2003년 지정), 두학동에 제천 두학동 석조여래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2004년 지정), 송학면 시곡리의 제천 시곡리 석조여래입상 등이 있다. 제천 시곡리 석조여래입상은 2004년 충청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유교 유산으로는 교동의 제천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두학동의 박약재(충청북도 기념물, 1993년 지정)와, 청풍면 물태리의 청풍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 · 청풍 한벽루(보물, 1971년 지정) · 제천 청풍 금남루(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 청풍 금병헌(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 청풍 팔영루(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 제천 청풍 응청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이 있다.

그리고 봉양읍 공전리의 자양영당(충청북도 기념물, 1984년 지정) · 송원화동사 합편강목 목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한수면 송계리의 황강영당 및 수암사(충청북도 기념물, 1977년 지정) 등이 있다.

또한 금성면 구룡리의 제천 박용원 고택, 월림리의 제천 정원태 고택을 비롯하여 청풍면 물태리의 제천 도화리 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 제천 황석리 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 제천 후산리 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 제천 지곡리 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가 있다. 제천 박용원 고택과 제천 정원태 고택은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또한 금성면의 제천 중전리 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한수면 송계리의 김세균 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 제천 명오리 고가(충청북도 민속문화재, 1981년 지정) 등 고건축물도 많다. 특히 청풍면 물태리에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지역의 국가유산들이 옮겨져 국가유산 단지가 조성하고 있으며, 향토문화전시관도 있다.

누정으로는 모산동 의림지(義林池)의 여호정(暎湖亭) · 경호루(鏡湖樓), 송학면 장곡리의 원호 유허비 및 관란정(충청북도 기념물, 1994년 지정), 봉양읍 구학리의 탁사정(濯斯亭) 등이 있다.

봉양읍 공전리의 자양금이 있다. 자양금은 1994년 충청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밖에 한말 의병의 발상지이며 유인석(柳麟錫)을 비롯한 의병들의 전적지가 곳곳에 많이 있다. 고암동에는 의병들을 위한 애국열사 묘역이 있다.

수산면 오티리의 제천 오티별신제, 한수면의 제천 송계리에 망개나무(천연기념물, 1983년 지정)가 있다. 제천 오티별신제는 2001년 충청북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1389년에 창건된 제천향교가 있다. 1590년에 현재의 교동으로 이전된 후 여러 차례 증 · 보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풍면 물태리에 청풍향교가 있었고 고려 충숙왕 때 창건한 뒤 1779년에 교리로 이건되었다가 충주댐 건설로 인해 1985년에 현 위치로 이전, 복원되었다.

서원으로는 1580년 화산동에 남당서원(南塘書院)이 설립되었으며, 1629년에 금성면 성내리에 봉강서원(鳳崗書院)이 설립되었고 1672년에 사액되었다. 1726년에 한수면 황강리에 황강서원(黃江書院)이 설립되었고 이듬해에 사액되었으나 1871년에 모두 철폐되었다. 이 중 황강서원에 있던 황강영당 및 수암사(遂庵祠)는 충주댐 건설로 인해 1982년 한수면 송계리로 이전, 복원되었다.

이 외에 1889년에 유중교(柳重敎)가 봉양읍 공전리에 자양영당을 설립하여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5년 한수면에 사립 찬명학교(贊明學校)가 개교되어 한수초등학교로 이어졌으나 1983년 충주댐의 건설로 인해 폐교되었다.

1908년 명동에 사립 측량학교(測量學校)가 설립되었고, 1911년에 제천공립보통학교로 변경, 운영되었는데 현 동명초등학교의 전신이다.

1908년 백운면에 사립 흥명학교(興明學校)가 설립되어 1919년에 평동공립보통학교로 바뀌었으니 현 백운초등학교의 전신이다. 모두 이 지역 신교육의 효시라 하겠다.

중학교로는 1942년에 제천공립실과여학교가 설립되었는데, 지금의 제천여자중학교와 제천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이다. 1943년에 설립된 제천공립농업학교는 설립되어 지금의 제천제일고등학교의 전신이며, 1946년에 설립된 제천공립초급중학교는 현 제천고등학교의 전신이다.

고등 교육기관으로는 1990년에 설립된 세명대학교가 있으며, 1994년에 설립, 인가된 대원공과대학은 1999년 대원과학대학을 거쳐 2012년 대원대학교로 변경되었으며, 1999년에 설립, 인가된 제천기능대학은 폐교되어 그 부지에 현재 한국폴리텍 다솜학교가 들어서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24개교, 중학교 13개교, 고등학교 7개교, 특수학교 1개교 및 전문대학 1개교와 대학교 1개교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제천문화원 · 예총제천지부와, 향토문화의 조사 연구단체로 내제문화연구회(奈堤文化硏究會)가 있다. 청풍면 물태리에 청풍문화재단지가 있으며, 이곳에는 1995년에 개관된 향토문화전시관도 있다.

민속

이 고장의 대표적 민속놀이로는 줄다리기와 장치기를 들 수 있다.

줄다리기는 정월 대보름날에 행해지는데, 마을사람들이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어 동편에서는 수줄을, 서편에서는 암줄을 만들어 걸어놓고 편장의 신호에 따라 농악대의 응원을 받으며 줄을 당긴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줄은 이긴 편에서 작두로 잘라 거름으로 쓰는데, 이 거름으로 농사를 지으면 대풍이 든다고 한다. 이 지방의 줄다리기는 풍년의 기원 외에도 지신(地神)을 누르기 위한 것이라는 민간신앙적 요소도 깃들여 있다.

장치기는 들이나 밭에서 청년들이 편을 갈라 긴 장대로 둥글게 만든 짚뭉치를 때려 양쪽에 세워놓은 지겟다리 사이에 넣는 놀이다. 일정한 시간 내에 많이 넣는 쪽이 이기게 된다. 여기에서 지는 편이 풀과 나무를 대신해주었다고 하나 지금은 전승되고 있지 않다.

이 고장의 동제에는 산신제와 서낭제가 있다. 덕산면 신현리의 산신제는 생기복덕이 맞는 제주와 축관 · 유사를 뽑아 매년 정월 설날 밤에 유덕산(有德山)과 다령산(多靈山) 위에 있는 제단에서 제를 지낸다. 유덕산신은 여신이고 다령산신은 남신이어서 유덕산제는 고기를 쓰지 않는 소산제(素山祭)이고, 다령산제는 고기를 쓰는 육산제(肉山祭)라 한다.

제는 유교식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데 특이한 점은 제주의 입을 한지(韓紙)로 봉하여 일체 말을 하지 않게 하며 손짓 · 눈짓으로 제사를 진행하고 축도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기(祭期) 동안에는 마을사람들도 금줄을 치고 부정을 막으며 근신한다.

한수면 보평리의 경우는 매년 초순에 길일을 택해 생기복덕이 맞는 제주가 당집에서 제를 지낸다. 대체로 제의 절차나 동민의 금기는 신현리와 비슷하나, 제물로 고기를 사용하며 축도 읽는다.

백운면 화당리의 서낭제는 매년 정월 열나흗날 밤에 제주가 서낭의 위패를 모신 동네 앞 서낭당에서 제물을 차리고 유교식 제사를 지낸다. 제기 동안 제주는 대문에 금줄과 황토를 깔아 부정을 막으며 매일 목욕재계를 하면서 근신하는 등 엄격한 금기를 지킨다.

설화 · 민요

이 고장에는 「박달재전설」 · 「오누이바위전설」 · 「금수산전설」 · 「높다리전설」등의 지명 전설들이 다수 전해오고 있다.

「박달재전설」은 조선 중엽 경상도선비 박달(朴達)에게 얽힌 전설이다. 박달이 한양에 과거보러 가다가 날이 저물어 이 곳 재 아래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그만 그 집 딸 금봉이와 눈이 맞아버렸다. 박달은 과거에 급제한 뒤 혼인하기로 금봉이와 굳게 약속을 하고 떠났지만 그 뒤로 아무런 소식이 없자 금봉이는 하염없이 재만 바라보며 기다리다 죽고 말았다.

박달은 과거에 낙방하고 금봉이를 대할 면목이 없어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는데 결국 그리움을 못 이겨 금봉이를 찾아오지만 이미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실성하여 그녀의 이름만 부르다 죽었다. 그때부터 이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누이바위전설」 또한 애틋한 사연이 깃들여 있다. 어떤 부부가 아이가 없어 산천기도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이상한 알 두 개를 주웠는데 그 속에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나왔다. 두 아이는 사이좋게 자랐는데 뒤에 누이가 오빠에게 연정을 품게 되어 마침내 사랑의 고백을 하였다.

오빠는 오누이 사이라서 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자 누이는 뒷산으로 뛰쳐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를 찾아 나선 오빠도 종내 돌아오지 않자 마을사람들이 뒷산으로 올라가 찾아 헤매었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고 전에 없던 바위가 두 개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바위를 오누이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금수산전설」은 중국 주나라의 천자에 얽힌 이야기이다. 천자가 하루는 세숫물에 명산(名山)의 모습이 비친 것을 보고 이를 두루 찾으니 바로 이곳 금수산이었다. 주천자는 죽어 이곳에 묻혔는데 지금도 거기에는 주천자의 묘라는 무덤이 있다. 단오 이전에 이 무덤에 있는 잡초를 뽑아주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이 무덤 주위에는 지금도 잡초가 없다 한다.

「높다리전설」은 300년 전 마을사람들이 냇물에 다리를 놓을 때, 지나가던 노승이 나중에 물이 많아질 테니 다리를 높이라고 해서 다리를 높이고 높다리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뒤에 충주댐이 생기자 물이 불어나 다리의 바로 밑까지 차게 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독송정(獨松亭) 산정에 죽은 딸의 시체를 암매장하여 딸이 학이 되었으나 날아오르다 다리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는 「학다리전설」, 여우가 부인으로 둔갑하여 진짜 부인과 다투었다는 「여우고개에 얽힌 전설」이 있다.

그리고 자라가 소를 잡아먹었다는 「자라소전설」, 몽고군을 물리쳤다는 「월악산신전설(月嶽山神傳說)」, 두씨가 명당을 찾고 춤을 추었다는 「두무동전설(杜舞洞傳說)」, 불공을 드리면 대웅전 천장에서 쌀과 조가 내려왔다는 「공전사전설(公田寺傳說)」, 그리고 「의림지전설」 · 「장수탑전설」등이 전한다.

이 고장의 지리적 위치가 강원도와 경상북도에 인접해 있어서 그 문화적 교류도 상호영향관계에 있다. 이 고장의 민요는 대체로 메나리목으로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타지방과 마찬가지로 이 고장에도 노동요와 의식요, 기타 유희요가 전승되고 있으나, 특정 노동형태가 생산방법의 변화에 의해 사라지면서 그 노동과 결부되었던 노동요도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즉 여성들의 노동요인 「베틀노래」나 「물레질노래」는 현재 베짜기나 물레질을 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에 베짜기나 물레질을 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매우 불완전하게 겨우 구전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베틀노래」의 단편을 찾아보면 “베를짜서 누굴주나/ 서울가신 우리낭군/ 직령도포 지어보세/ 직령도포 어데가고/ 일상대가 웬일이요/ 우리낭군전에 부친베개/ 둘이베자 하였더니/ 토막베개가 웬일이요……”와 같다.

이 고장에서는 「아랑성」이라는 모심기노래를 부르는 것이 특이하다. 모심기에 「아리랑」을 부르는 것은 강원도에서 널리 행해지는 일이다. 이것이 제천 · 단양 · 충주와 같은 충청북도 북부지역과 경기도 동남지역에 퍼진 것 같다.

이 지역의 모심기 노동요 「아랑성」은 세 마치 장단인 8장단으로 선소리를 메기면, 여럿이 8장단으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날넘겨주소.”라는 뒷소리를 받는다. 그 선소리는 “……이 논빼미는 모를 심어 삭잎이나 훨훨에 영화로다/ 일락서산에 해가 지고 월출한 동녘에는 달이 뜨기 전에/ 이 논삐미를 얼른 다 심고……”라고 한다.

이 밖에 의식요로서 장례 때 「상여소리」나 「회닫이소리」가 구전되고 있다. 선소리꾼이 일의 내용에 따라 느린 중중모리나 빠른 자진모리로 사설을 엮어가면 뒷소리꾼이 그 가락에 맞추어 뒷소리를 받는다. 이 고장이 교통의 요지이며, 광산지대이기 때문에 선로반원이나 광부들은 노동하면서 「목도소리」 등을 부른다.

산업 · 교통

이 도시의 토지이용을 보면 총면적 883.45㎢이며, 밭은 76.11㎢, 논은 35.05㎢, 과수원은 3.54㎢, 임야는 646.32㎢, 대지는 14.34㎢이다. 이처럼 경지면적은 협소한데 논보다 밭이 2배 이상이 많다. 밭이 우세한 것은 충주댐의 건설로 청풍면 · 한수면 · 수산면 · 금성면 등 지역이 수몰되었기 때문이다.

경작지의 대부분은 교동 · 용두동 · 두학동 · 화산동에 분포되어 있고 임야는 용두동과 두학동에 많다.

충청북도 전체비율에 대비하면 식량재배의 비중이 낮으며 식량작물재배는 감소하고 있다. 주요 식량작물로는 미곡이 많이 생산되고 있으나 무 · 배추 · 오이 · 호박 · 참외 등의 채소류와 사과 · 배 · 복숭아 · 감 등의 과실류 그리고 참깨 · 들깨 · 인삼 · 잎담배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가축으로는 한우 · 돼지 · 사슴 · 개 등이 사육되고 있는데 한우는 봉양읍 · 백운면 · 송학면 · 금성면 등지에서 많이 사육하고 있다. 임산물로는 대추 · 도토리 · 버섯 · 산나물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두학동에 장자제천공업 · 충일광업소 · 제원광업소 등의 광구가 있다. 총 167개의 광구 중 가행되는 것은 46개이며, 그 중 금속광은 7개가 가행이고, 비금속광 118개 중 39개가 가행되고 있다. 석회석은 180만 32797M/T, 규석은 10만 5670M/T, 장석은 2만 2700M/T, 금이 4M/T이 생산되고 있다.

시부의 공업은 명서동 · 중앙동 · 장락동 · 의림동 등에 집적하고 있었으나 강제(江諸)농공단지가 조성되어 공업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조립 · 금속 · 기계장비품, 화학 · 섬유 · 고무 · 플라스틱 제품, 섬유 · 의복 · 가죽제품 등이 생산되고 있다.

송학면 입석리의 아시아시멘트는 대규모의 공장으로 지역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대림세라믹단지(구 봉양농공단지), 금성테크노빌(구 금성농공단지), 송학테크노빌(구 송학농공단지), 고암테크노빌(구 고암농공단지), 강저테크노빌(구 강저농공단지), 제천바이오밸리(제천지방산업단지)의 6개 단지는 총면적이 181만 4000㎡이고 98개의 업체에 1,698명이 종사하고 있다.

시에는 중앙시장과 서부시장 등 2개의 공설시장과 중앙로 2가의 중앙쇼핑상가의 사설시장이 있다. 중앙시장은 대표적인 상설시장으로 귀금속 · 의류 · 식료품 · 약품 · 가전제품 · 가구 등 각종 고급상품이 거래되고 있는 현대식 상가건물로 되어 있다.

면부에는 12개의 정기시장이 있었으나 1985년 제천시에 인접한 봉양읍과 금성면의 정기시장이 폐시되고 청풍면과 한수면도 면 소재지 이전 관계로 정기시장이 폐시되어 현재는 수산면 · 덕산면 · 백운면의 정기시장만이 개시되고 있다.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제천공판장은 화산동에 부지 1,000평, 건물 400평의 시장으로 1992년 5월에 개장되었다. 제천공판장은 청주공판장에 비해 규모는 10분의 1, 투자액은 5분의 1, 거래금액은 10분의 1정도의 충청북도 제2의 공판장으로서 주변지역의 농수산물 유통에 기여하고 있다.

제천지방은 부근에 관광명소가 산재하고 있어 관광산업이 발달하고 있다. 제천관광 · 진양관광 등의 업체에서 알선업과 교통업을 겸하고 있다. 서비스업으로서 충주호 유람선이 통행하는 한수면 탄지리에는 월악선착장이 있고 부근에 호텔이 있어 관광객들이 이용하고 있다.

제천지방은 중앙선 · 충북선 · 함백선 등의 철도와 마산∼춘천 간의 국도 5호선과 평택∼정선 간의 국도 38호선, 제천시 · 금성 · 청풍 · 한수 · 수안보를 연결하는 국도 597호, 단양 · 덕산 · 충주 간의 지방도 등이 있어 교통의 요충지를 이루고 있다.

관광

국립공원인 월악산의 월악백경을 비롯하여 청풍팔경(淸風八景)의 청풍문화재단지와 금수산의 능강구곡(陵江九曲), 감악산(紺岳山), 박달재, 탁사정, 관란정, 의림지와 제림,배론성지 등 명승과 고적지가 많아 관광업이 발달하고 있다.

월악리의 월악산은 해발 1,097m로서 수려한 경관과 많은 문화유적들이 있어 1984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풍치가 아름다운 전국 유수의 관광지가 되고 있다.

용하수와 수문동 골짜기에는 수문동 폭포(水門洞瀑布) · 수곡용담(水谷龍潭) · 관폭대(觀瀑臺) · 선미대(仙味臺) · 수룡담(睡龍潭) · 활래담(活來潭) · 강서대(講書臺) · 수렴선대(水簾仙臺) 등의 용하구곡(用夏九曲)의 명소가 있다.

한수면 북로리에서 송계를 거쳐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에 이어진 송계계곡에는, 월악영봉 · 자연대 · 월광폭포(月光瀑布) · 수경대(水鏡臺) · 학소대 · 망폭대(望瀑臺) · 와룡대(臥龍臺) · 팔랑소(八娘沼) 등의 송계팔경(松界八景)이 있다.

송계리는 덕주산성과 덕주사지, 사자빈신사지의 석탑 등이 있어 훌륭한 문화관광지를 이루고 있다. 청풍팔경은 청풍호(淸風湖), 청풍문화재단지, 제일강산(第一江山), 장선협곡(長善峽谷), 대덕산구(大德山丘), 학현취적(鶴峴吹笛), 금수구곡(錦繡九曲), 서곡단애(鋤曲斷崖) 등을 말하고 있는데 특히 청풍문화재단지와 금수산의 능강구곡은 유명하다.

청풍면 물대리의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댐 수몰지역에 산재한 각종 국가유산을 집단 이전시켜 1만 6000여 평의 부지에 복원시킨 것으로서 보물 2점, 시도유형문화유산 9점, 비지정유산 32점이 있어 호반 관광지와 역사교육의 산교육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금수산은 절경을 나타내고 있는데 특히, 능강구곡의 쌍벽담(雙璧潭) · 몽유담(夢遊潭) · 와룡폭(臥龍瀑) · 관주폭(寬珠瀑) · 춘주폭(春珠瀑) · 금병당(錦屛堂) · 연자탑(燕子塔) · 탈당암(脫塘巖) · 취적대(翠滴臺) 등은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절경이다.

봉양읍 명암리의 감악산은 경관이 아름다운 산으로 산성이 있고 그곳에 백련사와 배향대가 있다. 박달재의 심심절벽은 장관이고 탁사정 · 관란정은 유서 깊은 정자이며 의림지와 제림, 배론성지는 역사가 깃든 곳이다.

읍 · 면
  1. 봉양읍(鳳陽邑)

시의 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144.83㎢, 인구 7,344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주포리이다. 본래 제천군 지역으로 제천에서 서울로 가는 옛 관행길의 오른쪽이 되므로 근우면(近右面)이라 하여 천남 · 신리 · 장평 등 16개 리(里)와 그 뒤 사리곡 · 고지동 등 2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근우면에 현우면(縣右面)의 하소리 일부가 편입되어 13개 리로 개편되었다. 1920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해 근좌면(近左面)의 6개 리가 병합되어 봉양리의 이름을 따서 봉양면이 되었다. 1983년 신리 · 천남 · 왕암 등 3개 리가 제천시에 이속되었다.

치악산맥이 남주하고 백운산맥이 서쪽으로 뻗어 국사봉(國師峰, 632m) · 감악산(紺岳山, 966m) · 구학산(九鶴山, 971m) · 월출봉(月出峰, 886m) · 석기암(石機巖, 906m) · 시루봉(700m) · 박달산 · 노루목산(705m) 등 많은 산이 높이 솟아 있어 산간지방을 이루고 있다.

남부는 산지가 많고 북부는 용암천(龍巖川)이 남류하여 주포리에서 서류하는 제천천(堤川川)에 흘러들고 있다. 제천천 유역의 봉양리 · 명도리 · 미당리 일대에는 침식분지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남천평 · 장평 · 소당평 · 공전평에서는 많은 미곡이 생산되고 있고 그 외 잡곡 · 양잠 · 잎담배 등도 많이 생산되고 있다.

가축으로는 한우 · 돼지 · 개 · 산양 · 닭 등이 많이 사육되고 있는데 특히 한우는 군내에서 가장 많이 사육되고 있다. 봉양농공단지는 총 면적 13만 2,869㎡에서 비금속광물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제천의 관문으로서 충북선이 분기하고 국도 538호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이며 아름다운 명산과 관광명소는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학리의 탁사정은 제천시 부근의 유일한 유원지로서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역사가 깃든 유서 깊은 곳이다.

문화유적은 공전리에 자양영당, 명암리에 백련사, 구학리에 탁사정, 팔송리에 송화사(松華寺), 원박리에 환암사(歡巖寺), 삼거리에 제비랑산성 등이 있다.

주포리(周浦里) · 장평리(長坪里) · 미당리(美堂里) · 명도리(明道里) · 봉양리(鳳陽里) · 명암리(明巖里) · 학산리(鶴山里) · 옥전리(玉田里) · 구학리(九鶴里) · 팔송리(八松里) · 연박리(硯朴里) · 원박리(院朴里) · 공전리(公田里) · 구곡리(九谷里) · 마곡리(馬谷里) · 삼거리(三巨里) 등 16개 리가 있다.

  1. 금성면(錦城面)

시의 중앙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8.57㎢, 인구 2,07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구룡리이다. 본래 청풍군(淸風郡)의 북쪽이 되므로 북면(北面)이라 하여 북진 · 성내 · 월굴 등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7개 리가 병합되어 금수산(錦繡山)의 이름을 따서 금수면(錦繡面)이라 하여 제천군에 편입되어 18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17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성산면(城山面)의 8개 리가 병합되어 금수와 성산의 이름을 따서 금성면이 되었다. 1929년도강 · 능강 · 상천 등 5개 리가 수산면, 1947년 북진 · 교리 · 학현 등 3개 리가 청풍면에 이속되었고 1980년 제천읍이 시로 승격됨으로써 제원군 금성면이 되었다. 1983년 강제 · 명지 · 산곡 등 3개 리와 1989년 대량리가 제천시에 이관되었다.

동쪽에 작성산(鵲城山, 805m) · 장치산(場峙山, 651m), 서남부에 당두산(堂頭山, 496m), 남부에 수름산(552m), 북동부에 구진산(句陣山, 481m) 등이 솟아 있고 북부지역에는 두학천(頭鶴川)의 지류가 북류하고 남부지역은 구룡천(九龍川)과 고교천(高橋川) 등의 하천이 충주호에 흘러들고 있는 침식분지이다.

산악이 많고 경지는 협소하며 고추 · 잎담배 · 참깨 등이 생산되어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가축으로는 돼지 · 한우 · 닭 등이 많이 사육되고 양봉도 활발하다. 임산물로는 도토리 · 대추 · 산나물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금성테크노빌은 총 면적 8만 6023㎡으로서 조립금속 · 기계장비업 · 섬유 · 의복가죽업 등의 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지방도가 중앙부를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 제천시와의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중전리 고가, 구룡리 박도수 가옥, 월림리 정원태 가옥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성내리의 무암사(霧巖寺), 동막리의 문성사(文成寺), 포전리의 작성산성, 사곡리의 은행나무 등이 있다.

구룡리(九龍里) · 진리(榛里) · 적덕리(積德里) · 사곡리(社谷里) · 활산리(活山里) · 월굴리(月窟里) · 성내리(城內里) · 중전리(中田里) · 포전리(浦田里) · 위림리(渭林里) · 월림리(月林里) · 양화리(陽化里) · 대장리(大壯里) · 동막리(東幕里) 등 14개 리가 있다.

  1. 덕산면(德山面)

시의 최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111.53㎢, 인구 2,27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전리이다. 본래 충주군의 지역으로 고려 때 덕산향(德山鄕)이 있었으므로 덕산면이라 하여 선림 · 도기 · 탄지 등 10개 리를 관할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제천군에 편입되었다. 1929년 보평리와 송계리가 한수면으로 이속되었고 청풍군 원서면 월악리가 편입되었고 1971년 수곡리가 수산면으로 이속되었다.

동부에 야미산(夜味山, 524m), 서부 한수면과의 경계에 월악산(月岳山, 1,093m), 남부에 대의산(大義山, 1,110m) · 문수산(文繡山, 1,162m), 중앙부에 응두산(鷹頭山, 1,100m) · 하설산(夏雪山, 1,028m) · 어래산(御來山, 815m) 등이 솟아 있다. 달천의 지류인 성천과 광천이 동남에서 서북 방향으로 면을 거의 삼등분하면서 흐르고 있다.

산악지대이지만 경지면적이 비교적 넓고 비옥하여 미곡을 비롯하여 잡곡, 잎담배가 많이 생산되고 있고 특산물로는 덕산 인삼과 한지(韓紙) 등이 유명하다. 임산물로는 송이버섯 · 도토리 · 대추 · 산나물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군내에서 지하자원이 가장 많아 월악과 용화의 중석광산은 한때 중석생산의 5대광에 속했으나 지금은 거의 대부분이 휴광되었다. 월악리의 월악산을 중심으로 한 월악산국립공원은 경치가 아름다워 절경을 이루고 있다.

지방도가 북부면계를 동서로 연결시키고 군도가 면의 중앙부를 거의 남북으로 달리고 있으나 산악지방이라 교통은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월악리의 신륵사에 신륵사삼층석탑 · 신륵사극락전 · 월악사, 신현리에 고산사(高山寺), 도전리에 덕수암(德修庵), 수산리에 보덕암(普德庵) 등이 있다.

도전리(道田里) · 성암리(城巖里) · 신현리(新峴里) · 수산리(壽山里) · 월악리(月岳里) · 선고리(仙古里) · 도기리(道基里) 등 7개 리가 있다.

  1. 백운면(白雲面)

시의 북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135.14㎢, 인구 3,29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평동리이다. 본래 제천군의 서쪽이 되므로 서면(西面)이라 하여 대티 · 알연 · 장금대 등 2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백운산(白雲山)의 이름을 따서 백운면이라 불렸으며, 1980년 제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백운면이 되었고 1989년 중원군 산척면 원월리를 편입하였다.

동부에 구학산(九鶴山, 971m), 서부에 십자봉(985m), 서남부에 시루봉(700m), 북부에 백운산(白雲山, 1,087m), 중앙부에 삼봉산(三峰山, 910m) 등이 솟아 있다. 중앙부는 화당천(花塘川) 등의 하천이 남류하여 원서천(院西川)에 흘러들고 제천천(堤川川)과 합류하고 있다.

방학리와 평동리를 중심으로 평야가 발달되고 있으나 경지면적은 좁고 두류 · 잎담배 · 누에고치 등을 많이 생산되고 있다. 가축으로는 한우 · 돼지 · 개 등이 많이 사육되고 있고, 임산물로는 도토리 · 표고버섯 · 대추 · 산나물이 많이 생산된다.

산악지대로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명소가 많다. 박달재는 동쪽 봉양읍과의 경계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개 아래에는 첩첩산중이고 대소의 연봉 능선이 사면을 에워싸고 있는 험준한 박달재 계곡이 있다. 박달재는 흔히 천등산 박달재로 많이 불리고 있는데 박달재 비문 · 팔각정 · 휴게소 등이 있다. 박달재 계곡은 아름다운 자연을 지닌 충청북도 내륙 제일의 고갯길로서 부근의 도덕암(道德巖)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운학리 입구의 노루목 계곡은 맑은 냇물과 주위의 경치가 좋아 많은 피서객이 찾는다. 남부는 박달재를 넘어 제천시로 통하는 국도가 있고 중앙부는 남북으로 달리는 지방도가 있어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과 통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도곡리의 중들(부수동)에 신라 경순왕 이궁지(離宮址), 민기 묘(閔機墓), 모정리에 사랑사지, 도곡리에 배령(拜嶺)터, 애련리에 장금대(張琴垈), 황나절골에 황산절터, 평동리에 둔지원터, 갈문산 남쪽에 불영대(佛影臺) 등이 있다.

평동리(平洞里) · 방학리(放鶴里) · 도곡리(道谷里) · 화당리(花塘里) · 덕동리(德洞里) · 운학리(雲鶴里) · 아정리(芽亭里) · 애련리(愛蓮里) · 원월리(院月里) 등 9개 리가 있다.

  1. 송학면(松鶴面)

시의 동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72.70㎢, 인구 5,131명(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시곡리이다. 본래 제천군의 북쪽이 되므로 북면(北面)이라 하여 신문 · 만곡 · 무도위 등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 뒤 3개 리가 더해져 19개 리로 되었는데 1922년 신담리 일부지역과 동면(東面)의 송티리 일부지역이 편입되어 송학산(松鶴山)의 이름을 따서 송학면이 되었다.

서부에는 용두산(龍頭山, 834m), 본면과 봉양읍 · 강원도 영월군 신림면의 교차지점에 석기암(石機巖, 906m), 본면과 영월군 남면과의 경계에 무가산(614m), 본면과 영월군 한반도면과의 경계에 화미산(花尾山, 483m) 등이 솟아 있어 서부는 높은 산지이고 동부는 낮은 산지이다.

제천천의 지류가 면의 동북에서 서남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 유역을 따라 철도가 부설되어 있고 생활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 · 옥수수 · 과수 · 고추 · 잎담배 · 약초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고 가축으로는 돼지 · 산양이 많이 사육되고 있으며 임산물로는 도토리 · 산나물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화강암과 석회암 등의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시멘트공장 · 채석장 등이 많다. 송학테크노빌은 총면적 9만 67㎡로 비금속광물업체, 조림금속, 기계장비의 업체가 입주해 있다.

중앙선과 함백선의 개통과 함께 송학역이 신설되었고 그 뒤 입석역이 개설되었다. 평택∼정선 간의 국도와 상모∼평창 간의 지방도가 있어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장곡리에 관란정(觀瀾亭) · 마애불상, 무도리에 뱃재[梨峴], 포전리에 점말동굴의 구석기 유적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도화리의 박전 효자문과 오인용 효자비, 파평윤씨 효열문, 용담사(龍潭寺), 시곡리의 소암사지 삼층석탑 · 월명사(月明寺), 무도리의 통불사(通佛寺) 등이 있다.

무도리(務道里) · 장곡리(長谷里) · 입석리(立石里) · 시곡리(柴谷里) · 도화리(桃花里) · 포전리(浦田里) · 송한리(松寒里) · 오미리(五味里) 등 8개 리가 있다.

  1. 수산면(水山面)

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88.89㎢, 인구 2,12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수산리이다. 본래 청풍군의 남쪽이 되므로 원남면(遠南面)이라 하여 오티 · 수산 · 수촌 등 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근남면(近南面)의 7개 리와 충주군 덕산면(德山面)의 적곡동(赤谷洞) 일부가 편입되어 수산리의 이름을 따서 수산면이라 하여 제천군에 편입되어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29년 금성면의 5개 리가 편입되었고 1944년도화리가 청풍면에 이관된 동시에 청풍면의 고명리가 편입되었다.

한수면과의 면계 부근에 매봉(422m), 적성면 상리와의 경계에 유명한 금수산, 서부에 야미산(夜味山, 525m) 등이 솟아 있다. 남부는 지곡천(池谷川)과 수산천(水山川)이 북류하고 중앙부는 남한강이 동쪽에서 서북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북부는 능강천(陵江川)과 상천천(上川川)이 흘러 남한강에 흘러든다.

산지는 많으나 남한강 유역에는 평야가 발달하고 있으며 주요 농산물로는 고추 · 약초 · 잎담배가 많이 재배되고 있는데 대전리의 인삼은 약효가 좋아 널리 알려져 있다. 양봉이 활발하고, 가축으로는 돼지 · 한우 · 닭 등이 많이 사육되고 있으며, 임산물로는 도토리 · 버섯 · 산나물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관내에는 명승지가 많다. 산자수명한 금수산을 비롯하여 능강리와 상천리 배후에 위치한 금수산 10리 계곡의 능강구곡은 절경을 이루고 있다. 수산면 남쪽 서곡리와 괴곡리의 남한강 주변의 옥순봉(玉筍峰)과 부용벽(芙蓉碧)은 운치가 일품이다.

물태리∼제천시 간의 지방도와 이설도로가 새로 개설되고 충주호 수상관광의 뱃길이 열려 교통은 편리해졌다. 문화유적은 능강리에 정방사(淨芳寺), 오치리에 오치봉수와 성공사(成功寺), 상천리에 대원사(大圓寺), 하천리에 미륵불 등이 있다.

수산리(水山里) · 내리(內里) · 적곡리(赤谷里) · 수리(水里) · 대전리(大田里) · 계란리(鷄卵里) · 괴곡리(槐谷里) · 성리(城里) · 원대리(院垈里) · 다불리(多佛里) · 전곡리(前谷里) · 구곡리(九谷里) · 도전리(道田里) · 율지리(栗枝里) · 지곡리(池谷里) · 서곡리(鋤谷里) · 상천리(上川里) · 하천리(下川里) · 능강리(綾江里) · 오치리(梧峙里) · 고명리(高明里) 등 21개 리가 있다.

  1. 청풍면(淸風面)

시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 면적 91.73㎢, 인구 1,28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그대로이다. 본래 청풍군의 소재지이므로 읍내면이라 하여 상리 · 중리 · 하리 등 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근서면(近西面)의 9개 리가 병합되어 비봉산(飛鳳山)의 이름을 따서 비봉면(飛鳳面)이라 하여 제천군에 편입되어 15개 리로 개편되었다.

1917년 옛 청풍고을의 이름을 따서 다시 청풍면으로 고쳤고, 1929년 제천군 수하면(水下面)의 9개 리가 편입되어 24개 리로 되었다가 1947년 금성면의 일부와 수산면의 도화리가 편입됨과 동시에 고명리가 수산면으로 이관되었다.

중앙부에 우뚝 솟은 비봉산(530m)을 비롯하여 동산(895m) · 망월산(望月山, 337m), 응산(422m) 등이 솟아 절묘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남한강이 북부지역을 반월형으로 곡류하여 산수가 조화된 청풍백경(淸風百景)을 창출하고 있다.

그 밖에 창천(倉川) · 학현천 · 단포천 · 진곡천 · 원당천 · 장선천 등의 하천이 충주호로 흘러든다. 충주 다목적댐의 건설로 27개 마을 중 25개 마을이 수몰됨으로서 물태리에 청풍이주단지가 조성되었고 북진 · 도곡 · 대류 · 연곡에 수몰민 집단취락이 조성되었다.

주요 농산물로는 황엽초 · 고추 · 마늘 등이 많이 생산되고 질이 좋은 한지도 생산되고 있다. 가축으로는 돼지 · 닭 등이 많이 사육되고 있고 임산물로는 도토리 · 버섯 · 산나물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지방도에 의해 제천시와 연결되고 있으나 수몰지역 간의 교통은 매우 불편하다. 물태리의 청풍문화단지에는 수몰지역의 국가유산을 이전하여 역사교육장 및 호반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어 주민의 소득 증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물태리에 한벽루 · 석조여래입상 · 금남루 · 금병헌 · 팔영루 · 청풍향교 · 의청각 · 도화리 고가 · 황석리 고가 · 후산리 고가 · 지곡리 고가 · 망월산성, 황석리에 산성 등이 있다.

읍리(邑里) · 연곡리(淵谷里) · 광의리(廣儀里) · 계산리(鷄山里) · 황석리(黃石里) · 후산리(後山里) · 사오리(査俉里) · 부산리(婦山里) · 장선리(長善里) · 단돈리(丹頓里) · 방흥리(芳興里) · 오산리(俉山里) · 진목리(眞木里) · 양평리(陽坪里) · 도곡리(陶谷里) · 대유리(大柳里) · 신리(新里) · 용곡리(龍谷里) · 연론리(連論里) · 단리(丹里) · 물태리(勿台里) · 도실리(道實里) · 이곡리(利谷里) · 도화리(桃花里) · 학현리(鶴峴里) · 교리(校里) · 북진리(北津里) 등 27개 리가 있다.

  1. 한수면(寒水面)

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75.57㎢, 인구 79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송계리이다. 본래 청풍군의 서쪽에 있으므로 원서면(遠西面)이라 하여 보평 · 노탄 · 역리 등 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제천군 수하면(水下面)으로 개칭되어 13개 리를 관할하였고, 1929년 원서면의 보평 · 황강 · 역 · 서창 · 탄지와 수하면의 호운 · 명오 · 함암, 덕산면의 송계리가 합해져 한수면이 되었으며, 1980년 제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제원군 한수면이 되었다. 1986년 포탄 · 함암 · 서운 · 명오등 6개 리는 중원군 동량면에 이속되었다.

동북부 청풍면과의 경계에 관봉(冠峰, 530m)과 서북부의 충주시 동량면과의 경계에 주봉산(珠峰山, 643m)과 죽방현(竹坊峴, 386m), 남부 동쪽의 덕산면과의 경계에 월악산 등이 솟아 있다. 충주호의 건설로 면 전체 마을의 84%가 수몰되었기 때문에 송계리에 면사무소 이주 단지가, 하탄 · 서운에 집단 취락지가 조성되었다.

경지면적이 협소하여 고추 · 인삼 · 잎담배 등의 경제작물이 많이 생산되고 있고, 임산물로는 도토리 · 산나물이 많이 생산된다. 중앙부를 동서로 국도가 달리고 중앙부에서 남쪽으로 지방도가 있다. 충주댐의 건설로 한수면 일대는 월악백경(月岳百景)과 송계팔경(松界八景)이 호반과 조화된 신비로운 절경을 이루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들고 있다.

월악산은 영봉 · 중봉 · 하봉 등의 3봉으로 산허리를 감도는 구름과 울창한 숲 사이로 보이는 가을 단풍, 봄 철쭉 진달래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우며 많은 절경지와 국가유산이 산재하고 있다. 북로리에서 송계리를 거쳐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까지 이어진 송계 계곡에는 여러 군데의 경치가 아름다워 송계팔경으로 불리고 있다.

문화유적은 송계리에 마애불상 ·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 · 김세균 고가 · 황강영당 및 수암사 · 덕주산성, 명오리에 고가 · 망개나무 등이 있다.

황강리(黃江里) · 서창리(西倉里) · 덕곡리(德谷里) · 한천리(寒泉里) · 역리(驛里) · 북로리(北老里) · 상로리(上老里) · 탄지리(炭枝里) · 보평리(洑坪里) · 송계리(松界里) 등 10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제천·제원사』(제천·제원사편찬위원회, 1988)
『문화재지』(충청북도, 1982)
『내고장전통가꾸기』(제천군, 1982)
『충북도지』(충북도지편찬위원회, 1982)
『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78)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70)
『한국지명연혁고』(권상로, 동국문화사, 1961)
『제천군지』(제천군지편찬위원회, 1961)
제천시(www.okj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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