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사 ()

조남사
조남사
언론·방송
인물
해방 이후 「동경나그네」, 「언덕위의 하얀집」, 「붉은침실」 등의 작품을 낸 작가. 방송작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3년 2월 10일
사망 연도
1996년 8월 22일
출생지
충청북도 영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해방 이후 「동경나그네」, 「언덕위의 하얀집」, 「붉은침실」 등의 작품을 낸 작가. 방송작가.
개설

본명은 남헌(南憲). 충청북도 영동에서 한학자 조관구(趙觀九)의 2남2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전주공업(全州工業)을 거쳐 일본 도쿄의 전수대학(專修大學) 경제학과에서 수학하였다. 1945년 11월 문예지(文藝誌) 『혈맥(血脈)』의 동인이 되었다.

생애와 활동사항

1948년 서울중앙방송국에 들어가 방송극 연출 담당이 되었고, 김영수(金永壽) · 이백수(李白水) 등을 스승으로 「똘똘이의 모험」 등 많은 작품을 다루면서, 당시의 인기 직업인 성우 양성에 주력하였다.

이해랑(李海浪) · 김동원(金東園) · 최은희(崔銀姬) · 백성희(白星姬) · 남해연(南海燕) · 이향(李鄕) · 박현숙(朴賢淑) · 장민호(張民虎) · 최무룡(崔戊龍) · 민구(閔九) 등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1949년 한운사(韓雲史) · 최무룡 · 장민호 · 민구 등과 극단 청막극회(靑幕劇會)를 조직, 그 대표가 되었다. 1950년 6·25전쟁 직전 명동 시공관에서 프랑스 파뇰(Pagnol,M.)의 「마리우스」를 상연하였고, 부산 피난 때 최요안(崔要安)과 함께 방송국을 지켰다. 수복 후 1956년 3월 미국무성 초청으로 도미, 반년 동안 방송을 공부하고 온 그는 한국 최초로 라디오 연속극 「청실홍실」을 집필, 연출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1957년 4월에는 최초의 일일연속극 「산넘어 바다건너」를 써서 장안의 인기를 독차지, 방송극 전성시대를 열었다. 1957년 가을 당시 유일한 민방인 HLKY기독교방송국에서 「수정탑(水晶塔)」을 집필하였고, 이어 1958년엔 중앙방송에 「동심초(同心草)」, 기독교방송에 「태양의그림자」 등을 발표, 방송극계의 총아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멜로물들이었다. 당시 전란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마음은 지칠대로 지치고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데, 세상엔 그들을 달래줄 위안물이 없었다. 소설도, 연극도, 영화도 별로 주목할만한 활동이 없을 때, 그 커다란 공간을 메워준 것이 방송극이었다. 그 뒤 영화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59년에는 신필름에서 「자매의 화원」 · 「어느 여대생의 고백」을 제작하였다.

한편, 방송극계에 거물들이 속속 나타났다. 김희창(金熙昌) · 이서구(李瑞求) · 최요안 · 한운사 · 임희재(任熙宰) · 이경재(李慶裁) · 김기팔(金起八) · 윤혁민(尹赫民) · 정진건(鄭鎭健) · 주태익(朱泰益) 등은 장안의 화제를 모으는 마술사들이 되어 라디오 · 드라마전성시대를 전개해 나갔다.

TV시대로의 전환이 진행되는 동안 그도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1963년 TBC(東洋放送)에 「동경나그네」 · 「언덕위의 하얀집」을, 1964년에는 특집기획 연속극 「일본인」을 썼다. 1965년 오리지날 시나리오 「아빠 아빠 우리 아빠」 · 「붉은침실」을 쓰고 나서 잠시 쉬었다. 1971년에야 MBC-TV에 연속극 「보라빛 욕망」 · 「선아의 호수」, 1972년에 「정(情)」, 1973년에 「행복」, 1974년에 「기러기」를 집필하였다.

1975년부터는 TBC-TV로 옮겨 「비밀」 · 「추풍령」 · 「부부」 · 「청실홍실」 · 「욕망」 · 「사랑도 미움도」를 썼으나, 1980년 KBS에 강제통합되자 집필 활동을 중단하였다. 만년에는 거의 미국에서 보냈다.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