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물(貢物)과 부역(賦役) 등 재무를 담당하였다. 584년(진평왕 6)에 설치되었다. 뒤에 경덕왕의 한화정책(漢化政策)에 의하여 대부(大府)로 개칭되었다가 혜공왕 때 다시 본래대로 환원되었다.
소속관원으로는 영(令)·경(卿)·대사(大舍)·사지(舍知)·사(史)가 있었다. 장관인 영은 2인으로, ≪삼국사기≫ 직관지에는 651년(진덕여왕 5)에 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신라본기에는 584년 3월에 조부령 1인을 두었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설치당시에는 1인이었다가 진덕여왕 때에 와서 2인으로 증원된 듯하다. 보임관 등은 금하(衿荷)에서 태대각간(太大角干)까지였다. 차관인 경은 2인인데, 처음 설치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며, 675년(문무왕 15)에 1인을 더하였으며, 관등은 □찬(□飡)에서 아찬(阿飡)까지였다.
대사는 2인으로 진덕여왕 때 두었으며, 경덕왕 때 주부(主簿)로 개칭되었다가 혜공왕이 다시 대사로 환원하였으며, 관등은 사지(舍知)에서 나마(奈麻)까지로 하였다. 사지는 1인으로 685년(신문왕 5)에 두었으며, 경덕왕이 사고(司庫)로 고쳤다가 혜공왕이 다시 사지로 환원하였으며, 관등은 사지에서 대사까지로 하였다.
최하위직인 사는 8인이었는데, 695년(효소왕 4)에 2인을 더하였으며, 관등은 선저지(先沮知, 일명 造位)에서 대사까지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