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장지연(張志淵)의 『조선유교연원(朝鮮儒敎淵源)』을 참고하여 『조선유학사(朝鮮儒學史)』를 썼고, 1953년 고려대학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조선사상사』 서문(단기 4282년 12월 12일에 쓴 것으로 기록됨)에서 밝히고 있듯이, 행장식(行狀式)의 전기를 나열하는 단순한 기사방식을 탈피하여 사상변천의 잔존물을 섭취하여 새로운 근육과 골격을 만들어 무성무취(無聲無臭)한 가운데 어떠한 개념이 생장발달(生長發達)하는 것을 적는 전통에 대한 기록이 되려 힘쓴 흔적이 있는 저술이다.
『조선사상사』의 일부로서의 『조선유학사』의 서문이 단기 4281년 11월 25일 쓰여진 사실을 비춰볼 때, 조선사상사는 조선유학사에 비해 1년여 뒤의 저작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서론(緖論), 상고(上古), 중고(中古) 그리고 근세(近世)로 나뉘어 다루어지고 있는데, 서론은 조선사상의 본질과 조선사상사의 임무, 조선사상과 구성요소, 조선사상과 그 발달의 개관 등이 다루어졌고, 상고편에서는 신도사상(神道思想), 화랑도(花郞道), 유학사상의 수입, 불교의 전래, 삼국시대의 불법경향(佛法傾向), 도교사상의 유입 등이 다루어졌고, 중고편에서는 고려시대의 불교, 유교사상, 신도사상, 참위설(讖緯說) 등이 다루어졌다.
그리고 근세편에서는 이조시대(李朝時代)의 불교의 총설(總說)이 씌여 있다. 이 저작의 특색은 그의 『조선유학사』와 비교해볼 때 조선시기보다는 고려말(高麗末)까지의 불교·도교·신도사상·참위설 등이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