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용봉(龍峰). 전라남도 순천 출신. 1944년 일본 제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에 들어갔으나 이듬해 광복을 맞아 중도 귀국하였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다시 편입학하여 1947년에 1회로 졸업하였다.
1949년에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같은 해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전임강사로 부임한 후 조교수·부교수를 거쳐 교수로 1964년까지 재직하였다. 1955년 봄 미국 미시간대학에 유학하여 1958년에 유렌벡 교수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때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이 유명한 조유렌벡(ChohUhlenbeck) 이론이 담긴 「고밀도기체의 운동론(The Kinetic Theory of Dense Gas)」 이다. 이 논문은 미시간대학 박사학위 논문으로 따로 발표된 바가 없으나 기체 운동론을 다루는 중요한 통계역학 교과서에 자주 인용될 만큼 통계역학, 그 중에서도 기체 운동론에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
학위 취득 후 바로 귀국하여 요람기의 한국물리학을 키우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 매진하였다. 1964년에 새로 개교한 서강대학에 옮겨갈 때까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강의와 학생지도에 전력하였다. 그리고 1974년 한국과학기술원 원장에 취임할 때까지 서강대학에서 이공대학장 등을 역임하면서 후학양성과 교육행정에 주력하였다. 이 기간 한국 물리학계를 일으켜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952년 6·25전쟁 중 부산에서 한국물리학회를 새로 만드는 창립 발기인으로 활약했으며, 1972년에는 제5대 한국물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71년 봄에 강우형(姜雨熒), 이구철(李龜澈) 등과 시작한 서강대학 수요세미나는 한국의 통계물리학을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1973년에는 한국물리학회에 열 및 통계물리 분과를 설치하고 한국의 통계물리학 발전을 주도하였다.
1980년까지 한국과학기술원 원장으로 한국과학기술원을 육성하는 데 공헌하였다. 원장직을 퇴임한 후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83년에 한양대학교 교수로 취임하고 같은 대학 교육대학원 원장을 역임한 다음 1990년 정년 퇴직하였다.
한국 과학의 여명기에 태어나 불모지인 물리학계에 학자로 교육자로 또한 교육행정가로 한국물리학 발전의 기틀을 다져 놓았고 학문에 대한 열정과 온화한 인품은 후학의 사표가 되었다. 이러한 공로와 업적으로 생전에는 녹조근조 훈장(1960)·국민 훈장 동백장(1972)·모란장(1990) 등을 받았고, 사후에는 최고 국민훈장 무궁화장(1996)이 수여되었다. 1965년에는 대한민국 학술원상(저작상), 1986년에는 성곡학술문화상도 수상하였다.
또한 1981년에 대한민국 학술원 정회원에, 1995년에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에 추대되었으며, 1995년에는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일반물리학』·『양자역학』·『고체물리학』·『수리물리학』·『통계역학』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