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수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돈녕부도정, 오위장, 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의중(毅仲)
  • 후계(後溪)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양(豊壤)
  • 사망 연도1741년(영조 1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오위장|판결사
  • 출생 연도1663년(현종 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오갑균 (청주교육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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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돈녕부도정, 오위장, 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의중(毅仲), 호는 후계(後溪). 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조형(趙珩)이고, 아버지는 현감 조상변(趙相抃)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83년(숙종 9)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88년 관학(館學)의 유생으로서 박세채(朴世采)의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을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694년 천거로 희릉참봉(禧陵參奉)을 거쳐, 장흥고주부(長興庫主簿)·연풍현감(延豊縣監)·옥천군수·회양부사를 지냈고, 이어 선공감부정·장악원정·무주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732년(영조 8) 아들 조적명(趙迪命)이 참판이 되자 통정대부에 올라 첨지중추부사가 되었고, 돈녕부도정·오위장을 거쳐 판결사에 이르렀다. 1741년 조구명(趙龜命)의 시문집인 『동계집(東谿集)』을 왕명을 받아 간행하고 발문을 썼다. 시에 능하였으며, 문집으로 『후계집(後溪集)』이 있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사마방목(司馬榜目)』

  • - 『조선도서해제(朝鮮圖書解題)』

  • - 『후계집(後溪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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