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제 ()

목차
관련 정보
조윤제
조윤제
현대문학
인물
해방 이후 『국문학사』, 『국문학개설』, 『한국문학사』 등을 저술한 학자. 국문학자.
이칭
도남(陶南)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4년(고종 41)
사망 연도
1976년
본관
함안(咸安)
출생지
경상북도 예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해방 이후 『국문학사』, 『국문학개설』, 『한국문학사』 등을 저술한 학자. 국문학자.
개설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도남(陶南). 경상북도 예천 출생. 아버지 조용범(趙鏞範)과 청주 한씨(淸州韓氏) 사이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생애

1924년 3월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4월 경성제국대학 예과(豫科)가 창설되자 제1회생으로 문과에 입학하였다.

이어 1926년 4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문학과에 진학, 조선어문학을 전공하는 유일한 학생이 되었으며, 1929년 3월에 동 학부를 졸업, 문학사의 학위를 얻었다. 이어 동 학부의 촉탁(囑託)·조수를 거쳐 1932년 3월 경성사범학교 교유(敎諭 : 일제 때, 중등학교의 교원)로 임명되었으며, 그 해 4월에 그의 첫 저서가 된 『조선시가사강(朝鮮詩歌史綱)』을 쓰기 시작하였다.

1939년 3월 경성사범학교를 사임, 자유의 몸으로 당시 보성전문학교 도서관장이던 손진태(孫晉泰), 뒤이어 대학 후배인 이인영(李仁榮)과 모여 학문 연구방법론을 토론하고, 그 결과 민족사관의 입장을 밝혔다. 그 뒤 경신학교·양정중학교·동성상업학교·천주교신학교 등의 강사를 역임하였다.

1945년 8월 조국광복과 함께 경성대학 법문학부 재건의 책임을 맡았으며, 이어 동 대학의 법문학부장, 개편된 서울대학교의 대학원 부원장, 문리과대학 교수 및 학장을 역임하고, 다시 성균관대학교 교수, 대학원장 및 부총장을 역임한 뒤 청구대학·영남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다가 71세 때인 1974년 2월 영남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였다.

활동사항

그의 저서로는 일제하에서 자비로 출간한 『조선시가사강』(1937)을 필두로 『교주 춘향전(校註春香傳)』(1939)·『조선시가(朝鮮詩歌)의 연구』(1948)·『국문학사(國文學史)』(1949)·『국문학개설(國文學槪說)』(1955)·『한국문학사(韓國文學史)』(1963) 등 20여권에 이른다. 논문으로는 1929년 2월 『동아일보』에 발표한 「조선문학과 한문학과의 관계」를 시작으로 50여 편, 수필·잡문 등은 거의 100편에 이른다.

『조선시가사강』은 우리의 시가사를 처음으로 학문적인 체계를 세워 서술한 책으로, 이제는 고전적 저술에 속하나 아직도 다시금 음미하고 고려하여야 할 중요한 사실들을 보이고 있다. 『국문학사』도 국문학의 형성과 발전을 우리 민족의 형성 발전과의 관련하에서 체계 있게 서술한 역작으로, 『한국문학사』는 그 개정판이다.

『국문학개설』은 국문학의 여러 측면에 대하여 다각적으로 분석과 고찰을 시도한 저서로 국문학개론류의 효시이다. 이 책은 크게 서론·각론(各論)·사론(史論)·통론(通論)·부론(附論)으로 나누어져 서술되어 있다.

특히 통론은 국문학과 인생, 국문학과 자연, 국문학과 외국문학과의 교섭, 국문학의 특질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핵심 부분으로 그의 학문적 깊이를 보여주는 주목할 부분이다.

이들 저서와 논문들은 모두가 이른바 ‘민족사관’에 입각하여 서술된 것들로, 일제하 황무지였다고도 할 국문학 연구에 있어 개척자적 역할을 하였다. 광복 후에는 국문학 연구의 출발점을 이루었으며, 동시에 그에게 있어서는 진지한 민족독립운동의 표출이기도 하였다. 한편, 그가 민족사관에 입각하고 있었다 하나, 그의 학문이 국수주의적이거나 독존적·배타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세계화적 일반 보편성을 추구하는 정정당당한 자세였음은 주목하여야 할 점이다. 그는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민족을 사랑한 그의 태도는 저술에서 뿐만 아니라, 대학 강단과 사회 생활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났으며, 그 과단성·청렴성과 학구적 양심은 옛 선비의 풍모를 보이기도 하였다. 대인의 풍을 갖춘 학자라는 일반의 평이 그리 어긋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참고문헌

「도남학의 전통과 국문학연구의 방향 설정」(조동일, 『도남학보』3, 1980)
「도남선생의 인간상」(이숭녕, 『도남학보』2, 1979)
「도남국문학의 탁월한 제사실들」(이명구, 『도남학보』1, 1978)
「도남선생연보」(『도남조윤제박사고희기념논총』, 1974)
「도남연보초」(『성대문학』10, 1964)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