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5년(인종 13) 묘청(妙淸)이 반란을 일으키자, 내시(內侍)로 유경심(柳景深)·황문상(黃文裳)과 같이 서경으로 가서 반란군을 설유(說諭)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오히려 도읍을 평양으로 옮기지 않으면 변란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반란군으로부터 받아 왔다.
1149년(의종 3) 서북면병마사로 재직했고, 이듬해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금나라에 다녀왔으며, 1161년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 이듬해에는 추밀원부사 겸 태자빈객(樞密院副使兼太子賓客)을 거쳐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