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1책. 목판본. 1909년 서흥 김씨의 시당숙부 심학환(沈鶴煥)에 의하여 강양(江陽 : 지금의 합천) 요산정사(樂山精舍)에서 간행되었다.
『종용록』 권두에 김도화(金道和)의 서문과 권말에 편자의 발문이 있다. 권1에는 김부인이 한글로 쓴 「김부인 유ᄒᆞᆫ셔」·「벽상셔」·「아바님젼상사리」와 이를 한문으로 번역한 송용완(宋鎔完)의 글이 실려 있다. 권2·3은 권1의 부록에 해당된다.
권2에는 김부인의 지극한 효열에 대하여 국가에서 정포(旌褒 : 선행을 표창함)하여주기를 청원하는 각계의 장문(狀文)과 그에 답한 뎨김〔題音〕및 각기 상부에 보고한 내용, 그리고 장례원(掌禮院)에서 입안한 문서와 훈령 등이 실려 있다.
권3은 찬술문자이다. 제문·고유문·상량문·정려기·전·묘갈명·유서의 발, 순절록발·감시(感詩) 등 김부인의 출생과 생장 그리고 효열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고 칭양한 글들이 실려 있다.
『종용록』 중에 권1의 한글유서는 남편의 죽음에 따라 순절하려는, 죽음을 앞에 한 한 여성의 흔들리지 않는 내면세계를 볼 수 있는 진솔한 가사체 내간문투의 글이다.
문학적 의의가 있음은 물론 합천지방의 방언과 언어적 사실을 볼 수 있는 자료적 의미와 아울러 사회사적으로도 의의가 크다 하겠다.
김씨가 산 시기는 1894년 갑오경장으로 과부의 재혼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면서 여성에 대한 봉건적 제약이 붕괴되어가던 때이다. 김부인의 순절은 1904년 초이므로 이와 같은 시류에 역행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김부인의 순절은 우리나라 봉건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마지막 여인의 순절이다. 그 당시 갑오경장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켜 이와 같은 문집이 엮어지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종용록』은 당시의 새로운 조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적 봉건윤리가 여성사회 저류에 깔려 있었음을 시사하는 귀한 자료이다. 이밖에도 전편을 통하여 그 당시의 사회상과 영남유림의 맥을 고찰하여보는 데에 좋은 자료가 된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