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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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연화동교회, 동경한인연합교회 등에서 목회한 목사.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6·25 전쟁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5년(고종 12)
  • 출생지평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석만 (서울대학교, 종교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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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연화동교회, 동경한인연합교회 등에서 목회한 목사.

내용

평양 출신.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이름 공삼(孔三)은 공자(孔子)와 주자(朱子) 뒤에 자기가 있다는 의미에서 붙인 것이다.

모펫(Moffett, S. A.)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그의 비서 겸 어학선생으로 일하면서 장대현교회에 출석하였다. 1909년위창석(韋昌錫)·박영일(朴永一)·김선두(金善斗) 등과 함께 평양 서문밖교회를 설립하였다. 1910년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에 독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1911년 8월 한국기독교사절단의 일원으로 일본교회를 방문하였는데, 당시 동행자는 양전백(梁甸伯)·장낙도(張樂道)·최병헌(崔炳憲) 등이었으며, 이 무렵 장·감 연합선교회 결정에 따라 동경한인연합교회 목사로 부임하였다.

1914년 귀국하여 평양 연화동 교회에 부임하였다. 1920년부터 약 3년간 총회 일을 맡은 뒤로는 무임목사(無任牧師)로 물러났으며, 1935년 평양양로원에 거액을 희사하여 사회사업에도 관심을 쏟았다.

이 평양양로원은 1907년 평양교회 도제직회에서 설립한 것으로 한국 양로원의 효시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광복 후 월남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공산군에 체포되어 끌려간 뒤 행방불명이 되었다. 목사이자 기독교 문인으로 널리 알려진 주요한(朱耀翰)이 그의 맏아들이다.

참고문헌

  • - 『동경교회칠십이년사(東京敎會七十二年史)』(재일대한기독교동경교회, 1980)

  • - 「나의 이력서」(주요한, 『한국일보』, 1979.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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