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 )

현대사
사건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여 탑승객 476명 중 304명의 사망자와 미수습자가 발생한 사건.
이칭
이칭
4 · 16 세월호 참사
사건/사회운동
발생 시기
2014년 4월 16일
발생 장소
전라남도 진도 인근 해상
관련 국가
대한민국
관련 단체
4·16 기억저장소
내용 요약

세월호(歲月號) 참사(慘事)는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여 탑승객 476명 중 304명의 사망자와 미수습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2015년 유가족들의 꾸준한 요구에 따라 세월호특별법이 제정되고 특별조사위원회도 출범하였으나, 참사와 관련한 여러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2017년에는 사회적참사특별법 제정과 함께 특별조사위원회가 새로이 출범하여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사를 지속하고 있다.

정의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여 탑승객 476명 중 304명의 사망자와 미수습자가 발생한 사건.
사건의 발생

2014년 4월 15일 인천항에서 청해진해운 소속의 여객선 세월호가 짙은 안개로 두 시간 지연된 상태로 출항하였다. 오전 7시경 진도 해역으로 들어섰고, 8시 50분경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119 전남소방본부에 선박의 침몰 사실을 최초로 신고하였고, 9시 30분경 목포해경 경비정이 사고 현장에 도착하였으나, 자력으로 배에서 빠져나온 승객과 선박직 승무원들만 구조하였다.

11시경 안산 단원고등학교는 학부모들에게 “해경으로부터 전원 구조 통보를 받았다.”라는 문자를 보냈고, KBS는 뉴스특보를 통해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전하였다. 그 시각 목포 해경구조대가 선내 진입을 시도하였으나 강한 조류로 실패하였고, 11시 30분 세월호는 배의 앞부분 일부만 남기고 전복된 채 수면 아래로 침몰하였다. 그리고 4월 18일 오후 1시 30분에 배의 앞부분마저 가라앉아 완전히 침몰하였다.

경과 및 결과

참사 직후 계속되는 허위 사실 보도와 책임자들의 책임 회피, 정치 · 언론에서의 실종자에 대한 명예 훼손식 발언이 이어지자, 2015년 5월, ‘4 · 16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 발족하여 대응 및 진상규명 활동에 나섰다. 같은 해,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구조 실패를 이유로 해경 해체를 선언하였다.

10월에는 검찰의 세월호 참사 수사 결과가 발표되었지만, 근본적인 의혹은 해결하지 못한 채 참사의 원인을 선원, 선사, 해경으로만 돌렸다. 11월에는 세월호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1기가 출범하였으나 당시 새누리당의 반대로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못한 채 2016년 9월에 강제 종료가 되었다.

2016년 6월, 참사 788일만에 인양 작업이 시작되었고 2017년 3월에 침몰하였던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월호 인양에 따라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조사가 개시되고, 사회적참사특별법 제정과 함께 2기 특별조사위원회 격인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하여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였다. 특별조사위원회는 영상 감시 장치인 DVR 수거 및 인계 과정, CCTV 데이터 조작 의혹을 제기하였다.

이에 2019년에는 검찰에서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이 출범하였고 2021년 1월에 활동이 종료되었다. 특별수사단은 세월호 관련 CCTV 조작 의혹 등을 중심적으로 수사하였으나 공소 제기 없이 활동을 종료하였다. '4 · 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2021년에도 조사를 지속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활동

2015년 5월 발족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참사 직후부터 피해자 및 그들의 가족에 대한 사실 왜곡과 명예 훼손에 대응하기 위해 기록물을 수집하고 증언을 남기기 시작하였다. 또한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 사회 건설을 요구하는 대정부 투쟁을 시작하였다. 600만 장이 넘는 서명을 받고, 국회 앞에서 밤샘 농성을 진행하며 전국에서 간담회를 개최하여 왜곡된 언론 보도를 고발,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호소하였다.

또한 단원고등학교 아이들의 교실을 기억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생명안전공원 설립을 위해 힘을 모았다.

활동의 일환으로 ‘4 · 16 기억저장소’를 설립해 2015년부터 유가족, 생존자, 잠수사 등 다양한 당사자의 증언을 모아 2020년에 『그날을 말하다』 총 100권을 발간하였으며, 2018년에는 유가족들이 아이들에게 육필로 쓴 편지를 모아 『그리운 너에게』를 발간하였다. 그 외 유가족들이 직접 유류품을 수집 정리해 보존 작업을 하고 있으며, 민주시민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기억전시관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세월호 참사는 여객선이 침몰하는 순간을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그들을 구해 내지 못하였다는 사실로 인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와 더불어 참사의 전후 상황에 대한 여러가지 의혹이 명백히 밝혀지지 않은 채 유가족에 대한 명예 훼손과 인신공격 등이 이어지면서 유가족과 연대하고 정부에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힘은 2016년 박근혜 퇴진운동에 하나의 동력으로 작동하기도 하였다.

또한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하고 선장과 선원들이 탈출하였다는 점에서 기성세대의 반성과 책임을 요구하고, 안전 사회 구축의 필요성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무엇보다 유가족이 직접 시민들을 만나고 정부에 대항하며 진실 규명을 요구하고, 더 나아가 안전 사회 구축을 위한 연대 활동, 민주시민교육과 생명안전공원 조성 요청 등을 주도해 가면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유가족’이라는 편견을 깨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보다 깊은 애도와 기억이 가능하도록 하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참고문헌

논문

김아람, 「'세월호 유가족'이 된 희생자 부모의 활동과 그 의미」(『구술사연구』 10-1, 2019)
이현정, 「말하기의 정치와 듣기의 윤리: '4·16구술증언사업'의 진행 과정과 그 함의」(『구술사연구』 10-1, 2019)

인터넷 자료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http://socialdisasterscommission.go.kr/)
4·16 그날 이후(http://www.416korea.org/)
4·16 기억저장소(http://www.416memory.org/)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https://416family.org/)
집필자
장미현(역사문제연구소)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