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문자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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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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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광문자전」은 조선 후기에 박지원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이다. 『연암집』 방경각외전에 실려 있고, 저작연대는 1754년(영조 30) 무렵으로 추정된다. 광문은 종로 네거리를 다니며 구걸하는 거지였는데, 외모는 더럽고 추했지만 정직하고 인정 많은 성품으로 큰 명성을 얻고 있었다. 작가는 순박한 광문의 인간상을 부각하여 세상의 풍속을 교화하려 한 것으로 생각되며,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사실주의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허균의 「장생전」, 판소리계의 「무숙이타령」, 이유원의 「장도령전」과도 통하여 당시 이런 이야기가 민간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목차
정의
조선 후기에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
내용

조선 후기에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 속편이라 할 수 있는 「서광문전후(書廣文傳後)」와 함께 박지원의 『연암집(燕巖集)』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에 실려 있다. 저작연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1754년(영조 30)경 18세 무렵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책의 서문에서 그가 18세 때 병을 얻어 밤이면 문하의 옛 청지기들을 불러 여염의 기이한 일들을 즐겨 듣곤 하였는데, 대개 광문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광문자전」을 쓰게 된 동기에 관하여 작자는 그 서문에서 “광문은 궁한 걸인으로서 그 명성이 실상보다 훨씬 더 컸다. 즉, 실제 모습(실상)은 더럽고 추하여 보잘것없었지만, 그의 성품과 행적으로 나타난 모습(명성)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원래 세상에서 명성 얻기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형벌을 면하지 못하였다. 하물며 도둑질로 명성을 훔치고, 돈으로 산 가짜 명성을 가지고 다툴 일인가.”라 하여, 당시 양반을 사고 판 어지러운 세태를 꾸짖었다.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문은 종로 네거리를 다니며 구걸하는 걸인이었다. 여러 걸인들이 그를 추대하여 두목으로 삼아 소굴을 지키게 하였다. 어느 겨울밤 걸인 하나가 병이 들어 앓다가 갑자기 죽게 된다. 그러자 이를 광문이 죽인 것으로 의심하여 쫓아낸다. 그는 마을에 들어가 숨으려 하지만 주인에게 발각되어 도둑으로 몰렸다. 그러나 그의 말이 너무나 순박하여 풀려난다. 그는 주인에게 거적 한닢을 얻어 수표교(水標橋) 밑으로 가서 숨어 있다가, 걸인들이 버리는 동료걸인의 시체를 가지고 있던 거적으로 잘 싸서 서문 밖에 장사지내 준다.

전에 숨으러 들어갔던 집주인이 계속 그를 미행하고 있었다. 그는 광문으로부터 그동안의 내력을 듣고는 가상히 여겨 광문을 어떤 약방에 추천하여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 어느날 약방에서 돈이 없어져 광문이 또 다시 의심받게 된다. 며칠 뒤에 약방 주인의 처 이질이 가져간 사실이 드러나 광문의 무고함이 밝혀진다. 주인은 광문이 의심을 받고도 별로 변명함이 없음을 가상히 여겨 크게 사과한다. 그리고 자기 친구들에게 널리 광문의 사람됨을 퍼뜨려 장안사람 모두가 광문과 그 주인을 칭송하게 된다.

광문은 남의 보증서기를 좋아하였다. 그가 보증하면 전당하는 물건이 없어도 많은 돈을 빌 수 있게 된다. 광문은 얼굴이 추하고 말은 남을 잘 감동시키지 못하였다. 입은 크고 망석중이놀이를 잘 하였으며, 철괴춤을 곧잘 추었다. 아이들이 서로 상대방을 놀릴 때는 “네 형이 광문이지.”라고 할 정도였다. 길을 가다 남이 싸움하는 것을 보고 그도 웃옷을 벗고 덤벼들어 벙어리 흉내를 내면서 땅에 금을 그어 시비를 가리는 것같이 하면, 싸우던 사람도 그만 웃고 헤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광문은 마흔이 되어서도 머리를 땋고 있었다. 사람들이 장가들기를 권하면 아름다운 얼굴을 좋아하는 것은 여자들도 마찬가지이므로 얼굴이 추해서 장가들 수 없다고 말하였다. 집을 지으라 권하면 부모처자도 없는데 집은 지어 무엇하느냐고 하였다. 장안의 명기들도 광문이 기리지 않으면 값이 없었다. 전일 장안의 명기 운심(雲心)이가 우림아(羽林兒) · 별감 · 부마도위(駙馬都尉)의 겸인들이 모여 술상을 벌인 자리에서 가무(歌舞)하라는 영을 듣지 않다가, 광문이 자리에 들어와 우스운 짓을 하며 콧노래를 부르자 운심이도 따라 칼춤을 추게 되었다. 이를 보고 모인 사람들이 모두 즐기며 광문과 벗을 맺고 헤어졌다.

「광문자전」에서 박지원은 여항인(閭巷人)의 기이한 일을 끌어와서 풍교(風敎)에 쓰려고 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인정 있고 정직하고 소탈한 새로운 인간상을 부각시키려고 하였다. 작가가 살고 있던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사실주의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광문자전」의 소원관계(遡源關係)는 허균「장생전(蔣生傳)」과 어느 면에서 상통한다. 판소리계 소설인 「무숙이타령」, 일명 ‘왈짜타령’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한편, 이유원(李裕元)의 『춘명일사(春明逸事)』에 나오는 「장도령전」과도 통하여 당시 이런 이야기가 민간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연암집(燕巖集)』
『연암소설연구』(이가원, 을유문화사,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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