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정조 때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
내용
통인(通引) 박상효(朴相孝)의 조카딸인 박씨는 대대로 현리(縣吏)를 지낸 하찮은 집안의 딸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어릴 때부터 조부모의 슬하에서 자랐다. 효도가 극진하였다. 19세에 함양의 아전 임술증(林述曾)에게 시집갔다. 술증이 본디 병이 있어 성례한 지 반년이 못 되어 죽었다.
박씨는 예를 다하여 초상을 치른 뒤에 며느리의 도를 다하여 시부모를 섬기다가 남편의 대상(大祥)날에 약을 먹고 죽었다. 박씨는 정혼한 뒤에 술증의 병이 깊음을 알았으나 성혼을 하였다. 초례를 치렀을 뿐 끝내 빈 옷만 지킨 셈이었다.
박지원은 박씨가 젊은 과부로서 오래 이 세상에 머문다면 친척들의 연민을 받고 또 이웃사람들의 망령된 생각도 면하지 못할 것이라 하여 상기(喪期)가 끝날 때를 기다려 지아비가 죽은 그날 그 시각에 죽음으로써 그 처음의 뜻을 이룬 점을 기리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이 글을 쓴 동기는 박씨의 열(烈)을 이 세상에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함양군수 윤광석(尹光碩) 등 3명이 「박씨전」을 썼기 때문이다. 박지원은 박씨와 같은 행위를 두고 열을 지키기에 얼마나 피눈물나는 극기(克己)가 필요한가를 그 반대의 경우를 들어 그 지나침을 풍자한 것이다.
개가한 이의 자손을 정직(正職)에 서용하지 말라고 한 국전(國典)은 서민을 위하여 마련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귀천을 막론하고 과부로 절개를 지킴은 물론, 나아가 농가 · 위항(委巷 : 여염)의 여인들까지 더러더러 물불에 몸을 던지고 독약을 먹고 목을 매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박지원은 일찍 과부가 된 한 여인이 깊은 고독과 슬픔을 달래기 위하여 동전(銅錢)을 굴리면서 아들 형제를 입신시킨 이야기를 삽화로 넣어 수절의 어려움을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넘긴 이야말로 진정한 열녀라 이를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박씨의 순절을 완곡히 비판하면서 그러한 행위가 만연하는 사회풍조, 나아가 과부의 개가를 금지시킨 사회제도에까지 비판이 확대되고 있는 이 작품은, 삽화를 넣으면서 설명과 문답으로 간결하고 실감있게 표현하였다.
참고문헌
- 『연암집(燕巖集)』
- 『연암소설연구』(이가원, 을유문화사, 196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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